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가을로 가는 길,

햇꿈둥지 2022. 7. 27. 11:55

 

#.

서가의 책들은 곰팡이 냄새가 풀풀 나고

성냥갑 만한 제습기 한대가 연일 비짓 땀을 흘려 가며 

집안 구석구석을 쥐어짜 봐도

온갖 것들이 여전히 눅눅 질척한데

영상으로 건너온 이제 열 달짜리

걸음걸이만 제법 뽀송해졌다

 

#.

겹겹의 푸른 껍데기를 끌어안고

붉고 선연했던 꽃술은 시름없이 늘어져서

이제

옥수수의 치열이 오동통 정연해졌으므로

육칠월 건너온 푼수떼기 풋날들을 

나날이 삶아 먹고 구워 먹고,

빈대궁은 전리품으로 모아 모아 추운 훗날까지 보존하기로,

 

#.

유리 조각 같은 햇살 속에

매미들은 다시 날카롭게 울고

하늘 가득

허공보다 가벼운 잠자리, 들,

제 아무리 더워도

어쩔 수 없이 가을로 가는 길이다.

 

#.

중복이 지난날,

개발 괴발 전지 한 장의 붓글씨 끝에

지난해부터 벼르기만 하던 부채 꾸밈을 마무리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바람이

풀 풀 쏟아져 나오라고 '화양연화'를 쓴 뒤

둔한 손을 어듬더듬 놀려 낙관 두 개를 만들었다.

몇몇 사람의 손에 나누어져

여름 다 가도록 바람만 피울 것,

 

#.

아침에도 

저녁에도

땡볕이 만만한 시간을 골라

오로지 뽑고 또 베고,

이노무 풀,

용을 쓴 끝에 뽑아 놓은 바랭이는

영덕 대게 엎어 놓은 것 같다.

 

#.

밭둑 풀을 뽑는 중에

그늘 큰 나무에서 쏟아져 나온 쌍살벌 군단,

내 집에서 조차

만만한 게 하나도 없다.

 

#.

햇볕이 쨍 하니

땀 절은 몸을 뒤집어 포쇄 하고 싶다.

 

#.

들락날락이 잦다 보니

파리 모기의 무단 침입이 부쩍이다.

파리채 신공으로 모조리 장살을 하다가

문득 궁금하기를,

 

#.

하느님,

파리채로 모기 잡아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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