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비와 번개 사이,

햇꿈둥지 2022. 8. 19. 09:00

 

#.

어떻게든 비를 뿌리기로 작정한건지

찔끔 비가 내리기도 하다가

요란스런 뇌우를 퍼 붓기도 하더니

 

#.

모처럼

햇빛,

 

#.

그래 봤자

고추 널기 좋겠다는 생각뿐,

 

#. 

줄에 묶인 강아지처럼

내 의식의 고갱이조차

산골 일상에 묶이고 만 것,

 

#.

비 속에 함부로 젖어 있던 홍화가

제 몸 가장 높은 자리에 꽃 한 송이 받들어

평화로운 한 낮,

 

#.

금빛 햇살

꽃으로 피어

온통 향기,

 

#.

생일이었다.

한 해 가족 모두의 기억해야 할 날들을

빼곡히 정리하면서

정작 나를 위한 날들은 빈칸으로 두었었다.

 

#.

발병과 재발을 거친 십 년,

주변의 의아한 시선 속에서

아주 가끔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 있어도 되나 싶었었다.

 

#.

치료하는 동안과

치료 후의 후유증까지

이런저런 통증들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건

내 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

그렇게

선물처럼 받아 든

또 

오늘,

 

#.

물 젖은 것 같은 이불을 빨고

냄새 배인 옷도 빨고

집 오름길의 더북한 풀도 베고

세탁기 더불어 고군 뺑뺑이 중,

 

#.

반짝 햇살 속에

눅진 이불을 포쇄 했으니

오늘 밤 꿈길에는 반짝 황홀하겠다.

 

#.

해 질 녘 산 공기가 제법 상큼하니

오늘 밤엔

반딧불이도 오시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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