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길 위의 길,

햇꿈둥지 2022. 7. 19. 16:57

 

 

#.

흐린 하늘 틈새의 인색한 햇빛을 모아

저토록 예쁜 꽃을 피웠다.

 

#.

사는 일이 매양 기적 같아

눈물겹다.

 

#.

수렵의 시대,

한 아이가 최고의 꾼으로 알려진 사부님을 모시고

연일 창 던지기 수업 중,

한 달 지나고

일 년 지나고

그렇게 십여 년,

사부님의 창이 과녁 정 중앙에 꽂혔고

제자가 던진 창은 과녁 한가운데 꽂힌 사부님의 창 끝에 꽂혔다.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도다.

 

#.

하여 실전,

사부님의 창이 멧돼지의 옆구리에 꽂히고

제자의 창이 다시 사부님의 창 끝에 꽂히고···

 

#.

배우고 익히되

어리석지 않아야 하는 일,

 

#.

장마 틈새

도끼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의

묵은 책 한 권을 구해 펼친다.

 

#.

앞 서 읽은 이가

제법 날선 부분들을 돋아 새기고자

파랗게 칠해 놓은 선들,

 

#.

책 속의 책,

길 속의 길이 된다.

 

#.

제가 태어나 자라는 동안을

늘 지켜보셨으니

늦은 결혼이거니 주례를 맡아 달라는

간곡한 전화를 듣다가

 

#.

정작 

낳아서 키워 준 이를 곁에 두고

무슨

태어나 자라는 동안이람,

 

#.

하여

아버지의 덕담으로 주례를 넘겨 버렸다.

 

#.

발병하고 10년

재발한 지 5년,

여전히 살아 있음을 기념하여

중증환자 등록에서 제외하고

이제부터 그동안 못 받은 치료비를

꼬박꼬박 받아 내야겠다는

병원의 불타는 의지,

 

#.

그러시든지,

 

#.

축하한다는 의사의 좋은 얘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

장마도 이제 기운이 다 한 건지

구름 새

푸른 조각보 같은 하늘이 제법 청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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