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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끝의 긴 장마로
사방이 온통 질척 눅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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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풀잎을 들추면
아주 작은 사마귀들이 꼬물꼬물 가을을 물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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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속 이거니 붉게 익은 자두를 바구니 가득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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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먹물뿐이던 서실 안에
붉은 자두향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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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골목에
조각보처럼 펼쳐진 고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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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땡볕의 햇볕을 모아
투명하게 말려야 한다는 것,
그 일을 위해
비짓 땀을 흘리고 나면 나 또한 투명하게 말라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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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넘어 도시 안에서 제법 친구들을 불려 가던 아이들이
기어이 그 아이들을 몰고 내 집으로 들어와
시골체험과 물놀이로 하루를 즐기겠다는 야심 찬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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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카레
간식은 김밥
그리고 또 또···
이게 뭔 일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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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염으로 내과,
팔꿈치 통증으로 정형외과
덤으로 한의원,
종합적으로 망가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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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장마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