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954

숨어서 오는 봄

온 산이 얼어 붙어 있는 산골 이거니 이제 우수가 지났습니다 전체의 풍광은 이렇게 겨울 깊은 모습이지만 양짓녘에선 숨어 자라는 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볕 좋았던 어제는 날 세웠던 눈들이 이렇게 녹아 골져 흐르고 있습니다 저녘 무렵엔 노을빛 조차 봄을 숨기지 못하고 저토록 순하게 타는 빛이 되었습니다 온통 얼어 붙었던 겨울의 틈을 헤집어 일찌감치 봄 차림이 한창인 순한 초록들 연한 순 만으로도 기꺼운 일인데 이토록 왕성하게 줄기조차 늘이고 있습니다 한 여름엔 손 부르트도록 엉길 잡초건만 이 겨울의 끝자락에서 만나지는 초록은 온통 반가움 뿐 입니다 아직 봄 으로는 이른 시간들 입니다만, 이토록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초록 성급 하지만 일일이 오신 님들께 드립니다 어쨌든 봄 입니다

소토골 일기 2006.02.20

개똥같은 개통식

산골살이 11년 비 오면 비 맞고 눈 오면 눈 맞고... 숙명처럼 자연이 주는 모든 조건을 견뎌내며 살았으니 어느 여름 어느 겨울이 특별히 힘겨웠노라고 엉깔꺼 하나도 없으나 20센티가 넘게 내린 눈을 겨우 겨우 치우고 나니 눈 치움을 보복이라도 하듯 밤새 또 그만큼의 눈이 쌓여 버려서 통증 뭉친 허리 어깨만 두드리며 망연자실케 했었다 아이들 없이 초로의 늙은이 둘이 겨울 속에 갇혀 지내는 세월 까짓거 차가 못 오르면 어떠랴~ 견뎌내는 중에도 곤란한 일은 주말이면 불쑥 불쑥 찾아 오는 친지이거나 이런저런 손님들 모질게 맘 먹고 근 세시간의 삽질 끝에 겨우 차 바퀴 닿을 부분만 헤집어 열어 놓았다 농사철에 이토록 열심히 삽질을 해 댔으면 대풍에 대박이 터질게 분명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몇일을 마을회관 옆에 ..

소토골 일기 2006.02.16

또 눈이 왔다

먼저 내린 눈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허긴 입춘은 지났지 얼마나 급한 마음일꼬?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겨우내 하늘이 머금었던 눈을 몽땅 쏟아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리하여 시골의 촌동네는 때 아니게 또 한겹의 겨울에 갇힌채 꽁 꽁 얼어 붙고 말았다 온몸에서 시루떡 같은 김이 피어 오르도록 땀 흘리며 눈을 쓸었으나 올라 오기는 마음도 못 먹을 일, 주말에 오실 손님 맞이 준비로 그 포동한 눈을 치우기만 바빴지 눈썰매는 생각도 못 했다 아까버라~ 어디 한군데 발붙일 곳이 있다구 그 동그란 외등 위에도 이렇게 탐스러운 눈이 얹혀 있다 봄 되면 치우리라던 주변 주변의 손질거리들 마져 온통 흰색, 게으른 생활에 천연 위장으로는 그만이다 장군이 짜식 똥꼬도 안 시린지 의젓하게 앉아서 설경을 즐기고 있다 장독대에는 항아리..

소토골 일기 2006.02.08

농사 계획

제목은 그럴싸하게 농사 계획 이지만 시골살이 십년 넘게 땅을 헤집어 사는 동안 계획대로 된 농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집 오름 길 정화조 귀신한테 놀란 자리에는 벌써 200여포의 퇴비들이 쌓여 있습니다 겨우내 살바람에 등 할퀴어 딱지 앉은 흙을 두드려 깨워 고운 속살로 뒤집고 저 많은 퇴비들을 일용 할 양식으로 드린 다음 딱 그만큼만 거두어 들일 생각 입니다 아내는 벌써부터 앞 마을 루시아 아줌마를 채근해서 고춧모를 키우겠노라는 열의에 차 있습니다만 어쩐지 제 눈에는 벌써부터 바랭이를 시작으로 왼갖 잡초 무성한 밭 꼴만 떠 올려 집니다 치악에 연접해 있는 맨 꼭대기 밭을 올려다 보면 열병식 처럼 도열해서 늠름하게 자라는 옥수수 보다는 횡포에 가까운 멧돼지 발자욱만 어지러히 떠 오르니 이것도 또 무얼 심어야 ..

소토골 일기 200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