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은 언제나 이렇게 온다 경기도 광주 어느 뒷길의 애기똥풀 손에 못 박힌데 없는 여리고 순한 오월의 날들이 설 익은 계절의 탯줄을 목에 감은채 섣부른 바람결로 온 들을 휘돌아 칠 때 부터 이미 살 오른 햇볕 농 익은 초록이 되거나 그늘이 되어 어느 날 문득 나 보다 넓은 등짝을 지닌 내 아이의 뒷 모습 처럼 유월은 언제나 .. 소토골 일기 2005.05.20
이씨~ 일 나가나? 스테파노 정원의 작약 마을에는 이장이 있다 이게 이 산골살이에서 유일하게 "장"자가 붙는 일종의 직함인게다 저 산 아래 저잣거리에는 얼마나 현란하고 요란하고 삐까번쩍한 직함들이 널려 있는가 누구나가 가급적이면 지배계급의 정점에 도달하고 가장 힘 있어 보이는 직함 하나를 내 이름 뒤에 .. 소토골 일기 2005.05.20
단 비 햇꿈둥지 뒷 그늘의 참나물 밭 정숙치 못한 바람을 등에 엎고 내린 간밤 비에 참나물들이 발돋움 하듯 키를 키우면서도 바람에 쓸려 모양새가 엄전치 못 하네요 이태 전쯤 스테파노의 뒷 뜰에 듬성 듬성 자라던 녀석들 몇 뿌리를 옮겨 심었더니 지난 한해 우쭐 키자란 녀석들, 꽃 피워 함부로 씨 뿌리.. 소토골 일기 2005.05.18
초록 술잔을 건넵니다 요즘은 날 밝음에 의해 잠을 깨는 것이 아니라 새볔까지 치렁한 달빛에 깨어나기 일쑤 입니다 냉이는 이제 꽃을 피웠으니 그 동안 몇 차례의 나물과 국의 호사로 막을 내린 셈이고 화살나무가 꼭 참새 혓바닥 만큼한 새 순을 틔웠으나 올해 심었으니 이 또한 욕심 낼 지경이 못 됩니다 이런 중에.. 소토골 일기 2005.05.17
수줍은 오월 간밤엔 초생달 아래로 맑디 맑은 개구리 소리 지천이더니 미명의 아침엔 이렇게 연한 안개 수줍음 심한 오월은 아직도 선뜻 품 벌려 안아 줄 생각이 없는 모양 입니다 조심 조심 안개 한자락을 들치고 들어서 보니 포동 포동 살 오른 돋나물 돌틈에 넘칩니다 뒷짐 걸음으로 어정 어정 뜨락을 거닐다가 .. 소토골 일기 2005.05.13
이사 왔어요 목조각가 무향 선생의 바보탈 오늘 처음으로 이삿짐을 들였습니다 자폐증 앓는 아이처럼 어디 외진 곳 외진 구석에 숨어 이 글 저 글 이 얘기 저 얘기들을 장난감 가지고 놀듯 주물럭 거리다가 그냥 훌쩍 옮겨 왔습니다 허긴~ 이웃에 계시면서 늘 등 따듯한 정을 나누어 주시던 어느 님의 권유에 의한 .. 소토골 일기 2005.05.12
나를 방생한다 봄 햇살은 나날이 치렁하게 여물어 가서 아래 영인이네 밭도 이장네 밭도 저 아래 전씨 영감님 댁 밭도 겨우내 어지러운 삭풍에 할퀴어 터진 손등처럼 메마른 흙들이 고운 속살로 뒤집어져서 감자를 끌어 안고 옥수수 씨앗을 끌어 안아...토닥 토닥 싹 틔우기가 한창인데 사래 긴 내 밭은 아직도 동면 .. 소토골 일기 2005.05.12
초록 그늘에서의 기도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초록 무성한 7월의 머릿날들, 나는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나와 같은 동종의 생명체라는 전제가 분명한데도 늘 서먹하고 낯설었던 도시, 어느 핸가 그 맛대가리 없는 거리를 빠져 나와 온통 초록 무성한 산 속에 들어 앉아 흙으로 처바른 둥지 하나를 지어 놓고 건들 건들 저잣.. 소토골 일기 2005.05.12
농사 결산 보고서 봄 볕이 온 들에 퍼질 때 우린 원기,혈기,의욕,뱃장 왕성하게 밭에 덤벼 들었다 집 뒤의 가장 적은 면적 그래서 호미 하나만 쥐고 덤벼도 만만해 보이는 터에는 상추와 시금치와 아욱과 파를 뿌렸다 물론 싹은 났지만 그래서 매우 흐믓하고 흐믓 했지만 너무 길게 흐믓해 하는 동안 발 빠른 잡초들은 그.. 소토골 일기 2005.05.12
이제 겨울 한 밤중 아이들 도깨비 놀이처럼 집안의 불을 몽땅 끈 채로 오두마니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상황을 만들 때가 있다 안온하다 가로등 휘황하고 온통 흐느적 거리는 저잣거리는 번뜩이는 네온들 마다 야릇한 향내를 풍기고 있을 터이다 지금 내 곁에는 어머니 몸속에서 양수의 압박으로 전해 오는 어둠 .. 소토골 일기 2005.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