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은 나날이 치렁하게 여물어 가서
아래 영인이네 밭도
이장네 밭도
저 아래 전씨 영감님 댁 밭도
겨우내 어지러운 삭풍에 할퀴어 터진 손등처럼 메마른 흙들이
고운 속살로 뒤집어져서
감자를 끌어 안고
옥수수 씨앗을 끌어 안아...토닥 토닥 싹 틔우기가 한창인데
사래 긴 내 밭은 아직도 동면 중,
급한 마음으로 동 동 거려 봐야 속 있게 되는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마음만 앞세워 또 신발끈을 조여 맨다
근 100여포가 넘을 퇴비를 뿌리고 이런 저런 손질로 밭고랑에 어지러이 뿌린 땀들이 적지 않다
"박 종구 씨"...
무슨 연유가 있었는지
마을에 멋대로 떠도는 얘기들로는 어디 먼 대처에서 둘만의 은밀함이 있어서 딸린 가족을 다 떼어 버리고 도피를 했노라...였다
그런 그 두 사람은 호리병 속 같은 웃새골에 이웃없는 딱 그들만의 영역을 마련 했고
에덴의 두 사람처럼 살아내고 있다
그에게 전화를 해서 밭갈이를 부탁 했다
근 삼년 넘는 세월을 숨어 사는 일들에 적지 않이 적응을 해서 굳이 마을 속에 어울림 없는 아웃사이더로 각인이 되어 있던 사람 이었는데
올 봄 부터는 이런 저런 농기계를 끌고 마을 안에서 적지 않은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음이 눈에 띈다
그렇게 어깨 결리고 허리 뻐근한 일들을 마치고 나니
일찍 찾아든 산골 어둠이 번지기 시작 했다
물가에 솣탄 하나를 피우고 고추장 양념이 진하게 배인 고기 세쪽을 구워 독작의 소주 잔 비우기 끝에
장 사익이 타령인지 리메이크인지의 각혈하듯 불러 제키는 노래를 마음껏 볼륨 올려 놓고
철퍼덕~
물가에 앉아 낭낭하게 취기 오르는 저녘,
서산에
콘택트 렌즈 같은 초생달이 예쁘게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