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이다. 일거리를 만들어 판을 벌이기 전에는 일이 없다. 허긴 이제 일이 있어도 할 수 조차 없다. 날마다 서리 내리고 얼음이 얼고 그리고 모서리 날카로운 골짜기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구들방조차 나무를 하기도 장작을 만들기도 힘이 드는 것은 물론 날마다 때마다 숙제하듯 불을 넣는 일에도 심드렁하여 따개비처럼 거실 한켠에 붙어 맘 놓고 게으른 채 겨울을 나는 중이다. #. 이 겨울에 산골을 찾아온 이가 더듬더듬 나이를 물었으나 성의 없는 대답, '해마다 바뀌는 걸 어찌 다 기억하누...'였다. #. 이 마을 들어산지 어언 서른 해가 되어가니 이때쯤이면 마을 안에 감투들이 허공에 난무하여 그 노무 완장이 돌고 돌아 내게도 권유하는 이가 있으나 그저 무심한 듯 고사하기, 그럼에도 어쩐지 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