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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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吾所好,

#. 겨울이다. 일거리를 만들어 판을 벌이기 전에는 일이 없다. 허긴 이제 일이 있어도 할 수 조차 없다. 날마다 서리 내리고 얼음이 얼고 그리고 모서리 날카로운 골짜기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구들방조차 나무를 하기도 장작을 만들기도 힘이 드는 것은 물론 날마다 때마다 숙제하듯 불을 넣는 일에도 심드렁하여 따개비처럼 거실 한켠에 붙어 맘 놓고 게으른 채 겨울을 나는 중이다. #. 이 겨울에 산골을 찾아온 이가 더듬더듬 나이를 물었으나 성의 없는 대답, '해마다 바뀌는 걸 어찌 다 기억하누...'였다. #. 이 마을 들어산지 어언 서른 해가 되어가니 이때쯤이면 마을 안에 감투들이 허공에 난무하여 그 노무 완장이 돌고 돌아 내게도 권유하는 이가 있으나 그저 무심한 듯 고사하기, 그럼에도 어쩐지 뭔가를..

풍경소리 2023.12.07

겨울 산골,

#. 하루종일 말 한마디 나눌 이 없는 진공의 적막, 고요의 고요, #. 어스름 뒤 따라 어둠보다 먼저 외로움이 발을 들여 놓았다. #. 작은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 유일한 동사가 되어 허공 속에 비틀거리는 산골, #. 여름날 그토록 수다스럽던 산새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한 안부, #. 새벽까지 치렁한 빛을 뿌리던 열나흘 달님이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서산을 넘는 시간, #. 온 들에 표창 같은 서리 내리고도 #. 청남빛 허공 가득 투명하게 전도되는 추위, #. 그리고 · · · · · 눈이 내렸다.

소토골 일기 2023.11.27

게으름 고추가루,

#. 햇볕에 말린 태양초는 양건이라 하고 건조기로 말린 고추는 화건, 건조기와 햇볕을 반반쯤 섞어 말린 고추는 반양건이라 한다더라. #. 시골살이 처음으로 냉(冷)건을 시도 중이다. #. 의도된 것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이렇게 되었으니 게으름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 11월 이른 추위에 살짝 얼다가 녹다가 제 풀에 지쳐 반 넘어 마른 고추를 이제야 거두어 말린 뒤 가루 지었다. #. 냉건하여 만들어 낸 게으름(懈) 고추(椒), 해초(懈椒)라고 해야하나? #. 맛이야 어찌됐건 얼었다 녹아 고춧가루가 되었으니 어느 음식에 들어가든 시원한 맛은 분명 할 듯,

소토골 일기 2023.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