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從吾所好,

햇꿈둥지 2023. 12. 7. 03:10

 

#.
겨울이다.
일거리를 만들어 판을 벌이기 전에는 일이 없다.
허긴 이제 일이 있어도 할 수 조차 없다.
날마다 서리 내리고 얼음이 얼고 그리고
모서리 날카로운 골짜기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구들방조차 나무를 하기도 장작을 만들기도 힘이 드는 것은 물론
날마다 때마다 숙제하듯 불을 넣는 일에도 심드렁하여 
따개비처럼 거실 한켠에 붙어
맘 놓고 게으른 채 겨울을 나는 중이다.

#. 
이 겨울에
산골을 찾아온 이가 더듬더듬 나이를 물었으나
성의 없는 대답,
'해마다 바뀌는 걸 어찌 다 기억하누...'였다.

#.
이 마을 들어산지 어언 서른 해가 되어가니
이때쯤이면 
마을 안에 감투들이 허공에 난무하여
그 노무 완장이 돌고 돌아 내게도 권유하는 이가 있으나
그저 무심한 듯 고사하기,
그럼에도 어쩐지 뭔가를 떠 맡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더더구나 그 별것 아닌 감투를 위해 동원되는
촌스럽기 그지없는 권모와 술수,
나는 그저 환장이나 하고 말지,

#. 
올 한해가 헐러덩 비워져 간다.
세월은
그저 무심하게 흐르는 듯해도
사실은 
무겁디 무겁게 쌓이는 것 이어서
올해도 나는 완전 연소를 그르친 채
세월의 등짝에 얹혀 표류를 일삼았을 뿐,

#.
온갖 게으름을
적당한 변론으로 치장한 뒤
서가에 쌓여있는 책과 더불어
찬바람만 몰려다니는 산골 한낮 시간을 탕진하고 있다.
꿈속의 공자가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라 산다'
날라리 건달이 따라 한다.
'꼴리는 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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