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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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다림,

#. 네팔을 떠돌고 있는 이들이 꾸샤풀(吉詳草)로 만든 방석 위에 석가모니처럼 앉아 해맑은 얼굴의 사진을 보내고 산골엔 또 눈이 내리고 나는 우익지욱이 쓴 오래 전의 주역선해를 읽고, #. 그리고 눈 부시지 않은 새벽이 왔다. #. 그럭저럭 새 해 첫 달도 어느새 하순의 날들, #. 춥다가 덥다가 눈이 오다가 맑기를 두서없이 반복하던 아득한 허공에 다시 바람이 일고 낯 선 발자국 소리로 눈이 내린다. #. 깡총 소한도 대한도 건너뛰었으니 이제 곧 입춘, #. 그렇게 봄이 온다는데 나는 또 무엇을 하고 누구를 기다려야 하나 #. 겨우내 게을렀던 손을 정갈하게 씻고 공손하게 먹 갈고 붓 들어 입춘첩 몇 장을 쓰고자 한다. #. 입춘대낄 하여 그냥다정 하고자,

풍경소리 2024.01.22

만두 법석,

#. 예겸이 가족의 일주일 북새통 뒤에는 사은품으로 감기가 남아 있었다. #. 덕분에 정들어 궁금했던 시내 병원의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 병원 다니면 일주일 그냥 버티면 7일쯤 앓게 된다는 이노무 감기, 몸 안의 체액이 몽땅 콧물로 흘렀다. #. 며칠째 콧구멍이 얼큰하다. #. 그리고도 극성왕성 하신 아내의 모의로 시작된 처가 식구들의 2박 3일 만두 법석, #. 온갖 수다를 만두소 삼아 산골 한밤이 뜨끈하고 왁자하였으므로 #. 홀로 저 먼 구석에 낑겨 긴 긴 겨울밤 감기 앓기에 좋았다.

소토골 일기 2024.01.13

겨울 무늬,

#. 아득한 하늘에서 분분한 눈송이들 올려다보고 있으면 눈송이 보다 먼저 현기증이 쏟아져 내렸다. #. 추위의 현신, 허공 조차도 간혹 제 모습을 흘려 놓을 때가 있어 저토록 예쁜 문양을 만난다. #. 동지가 지나면 하루에 쌀알 한 톨만큼씩 낮이 길어진다고 했다. 느리지만 봄으로 그리고 여름으로 가는 시간들, #. 갑진년이라 하니 뭔 일을 하든 값진 일이 될 것 같은, #. 허튼 소리에 할머니 한 분 틀니가 빠질 만큼 웃더니 매일매일 한 번씩 들려 요 딴 얘기를 한 가지씩 해야 한다는 거다. #. 스무 장 너머의 입춘첩을 쓰기로 한다 마을 안 많은 이들의 이구동성, 이 또한 오지랖이다. #. 맘 놓고 눈 내리던 날 제 키 만큼의 높이로 우뚝하던 꼬마눈사람들이 더러는 눕거나 엎드려서 겨울의 잔재로 녹아내리..

소토골 일기 2024.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