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온다고 했던가?
비 보다 더 요란한 예보 뒤에
그야말로 찔끔
빗방울 몇 개 오셨다.
#.
산 넘어에서
초롱초롱 넘쳐흐르던 샘물이
가뭄에 덜미 잡혀 힘겹게 흐르더니
기어이 절명 하셨다.
#.
잦은 비가 걱정되던 시절도 있었음을 기억하는 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
급히
상수도로 바꾸기는 했지만
문제는
비닐하우스에 심긴 고추의 급수 방식이
산속 샘물을 집수하여 점적으로 보내는 방식이니
올 고추 농사는 망했다.
#.
아니면
참을성 있는 고추들이
이 가뭄을 그럭저럭 견딘 채
마른 고추를 열리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서해의 먼 섬에서 온 바지락과
산골 아욱이 만나
아득한 시절의 엄마 맛을 흉내 낸 채
황홀한 국물이 된 아침 밥상,
#.
이러면 됐지
가뭄 걱정일랑 하여 무삼하리오,
#.
포동 하던 작약이
제 발등에 꽃잎을 떨구던 날,
오월의 푸른 날들은
초록 그늘 아래 소복히 쌓여 있었다.
#.
이소한 어린 새들의 서툰 날갯짓이
푸른 바람 되어 흔들리는
산 속
눈 깊은 허공,
#.
이제 유월이 되는 거라고
하루 종일
뻐꾸기 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