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전화 또는 전화기

햇꿈둥지 2024. 6. 17. 05:33

 

#.
열 번 전화하면
열한 번 안 받는 친구가 있다.

#. 
열흘 전쯤의 전화를 뭉개고 있다가
오늘 불쑥 전화 해서는
왜 전화했느냐?... 고 묻는
통신 문명에 지극히 냉소적인 사람,

#.
그저 안부가 궁금하여
전화해야지
전화해야지
염불을 하다가
이제는 
전화를 했는데 내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
너도 나도
중증으로 
망가져 가고 있다.

#.
아내는 전화기를 어디다 두었는지 찾아 헤매기를
하루에 25시간
일주일에 8일씩,

#.
하이빅스비라는 것이 있다더라
알라딘 램프의 요정처럼
"하이빅스비 전화기 찾아줘"하고 주문을 하면
특정음으로 위치를 확인해 주는 기능인데
언젠가는 냉장고 안에서 출토된 일도 있었다.

#.
숨 쉬는 횟수보다 더 많이
찾아줘~ 찾아줘~ 하였으므로
주문을 견디다 못한 가엾은 하이빅스비가
과로로 인해 홀연히 까무러친 일도 있었다.

#.
이제 전화기는
통화를 위한 기능은 부가 기능이 되어버리고
이것도
저것도
온갖 것이 그 안에 들어앉아
나를 인식하게 하거나 통제하는 도깨비방망이가 되어 버렸다.

#.
몇년째
매 주말 시골집 고치는 일에 고행처럼 매달려 있던 S교수는
모든 일을 마친 토방에서 
불교 철학 강좌를 개설한다 하고

#.
힘든 병 치료를 잘 끝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 온
K선생의 복귀도 감사한 일이니

#.
오랜만에 하느님께
안부 전화나 한통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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