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장마 후,

햇꿈둥지 2024. 8. 7. 04:28

 

#.
집안 청소 중에
이 구석 저 구석 이거나 소파 틈새 곳곳에서
아이들이 두고 간 여름의 흔적들이 출토되고 있다.

#.
산길 듬성하게
달보드레한 칡꽃이 떨어져 쌓이고 있다.

#.
그 향기 사이를 즈려밟는
황송하기 그지없는 새벽 걷기,

#.
장마가 두고 간 일거리들,

#.
세탁기는 며칠째
집 안의 이불 모두를 끌어 안은채 용을 쓰고 있고

#.
간간히 
다 말랐다 싶은 빨래들을
게릴라 같은 소낙비에 적시는 일,

#.
사방 천지에 치솟아 있는 풀들을
뽑거나
베어내기,

#.
오로지 
낫 한자루 손에 쥐고
고군과
분투 중,

#.
온열 질환에 유의 해야 한다고
수시로 문자가 범람 하지만
잡초 질환에 대해선 묵묵부답인
문자
문자
문자들,

#.
앞 산 등때기에 매달린
산사의 범종이
바위 같은 무게로 울리는 시간,

#.
온몸의 땀을
산속 샘물로 씻고
초록 그늘 아래를 어지렁 거리다 보면

#.
제법 꼼꼼하게 순서를 정해
쌓인 일들을 정리해 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눈에 띄는 이 일과 저 일들,

#.
산골살이 스무 해 넘어
온몸에
수신거부가 불가능한
골병 마일리지가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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