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하느님, 한 고뿌 하실래요?

햇꿈둥지 2022. 1. 27. 06:05

 

 

#.

시골 구석에 들어앉아

아흔이 멀지 않은 노모를 홀로 모시는 친구 얼굴도 볼 겸,

훌쩍 마실 길, 

 

#.

한 낮 바람이

제법 부드러웠다.

 

#.

이 변덕 수에 넘어가 

일찌감치 무장 해제를 하면은

결국 고뿔 치레를 하게 된다는 걸

산골살이 이십 년 넘어의 내공으로

깨우친 지 오래 건 만

조급한 마음이 먼저

우수 경칩을 건넌다

 

#.

엄벙덤벙 지은 농사라며

혼자 들기 버거운 쌀 한 포대를

집어던지듯 차 안에 밀어 넣었다.

 

#.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음식점에 앉아 그저 말없이

밥 한 그릇을 먹는 일,

 

#.

자주 뵙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슬그머니 밥값을 내는 일로 메웠더니만

그 어머니 말씀,

옛날처럼 내가 밥을 해 줄 수 없으니

점심 사 주려고 했었다며

굳이 손에 쥐어 주시는 꼬깃한 만원 짜리 두 개,

 

#.

한 만원은 네 꺼고

한 만원은 며느리 꺼라며,

 

#.

헤어지는 자리

편안한 친구 하나 있으니

잘 늙어가는 것 같다고

고해성사 같은 인사를 나누었다.

 

#.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듯하고

손 잡아도 멀리 있는듯한 친구,

 

#.

신학을 공부하고도

목회의 길을 버린 채

제 안에

조그만 성전 하나를 간직하고 사는 친구,

 

#.

그 친구가

시골 방에 걸어 두게

글 하나를 써 달라고 했다.

 

#.

뭐가 좋겠냐?

이거 어때?

「하느님 한고뿌 하실래요?」

 

#.

그노무 한고뿌,

 

#.

이제 진짜 늙어가나?

보고 있으면 맘이 썩 편해지는 그 친구와 헤어질 때 마다

괜히

찔끔 울고도 싶어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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