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 구석에 들어앉아
아흔이 멀지 않은 노모를 홀로 모시는 친구 얼굴도 볼 겸,
훌쩍 마실 길,
#.
한 낮 바람이
제법 부드러웠다.
#.
이 변덕 수에 넘어가
일찌감치 무장 해제를 하면은
결국 고뿔 치레를 하게 된다는 걸
산골살이 이십 년 넘어의 내공으로
깨우친 지 오래 건 만
조급한 마음이 먼저
우수 경칩을 건넌다
#.
엄벙덤벙 지은 농사라며
혼자 들기 버거운 쌀 한 포대를
집어던지듯 차 안에 밀어 넣었다.
#.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음식점에 앉아 그저 말없이
밥 한 그릇을 먹는 일,
#.
자주 뵙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슬그머니 밥값을 내는 일로 메웠더니만
그 어머니 말씀,
옛날처럼 내가 밥을 해 줄 수 없으니
점심 사 주려고 했었다며
굳이 손에 쥐어 주시는 꼬깃한 만원 짜리 두 개,
#.
한 만원은 네 꺼고
또
한 만원은 며느리 꺼라며,
#.
헤어지는 자리
편안한 친구 하나 있으니
나
잘 늙어가는 것 같다고
고해성사 같은 인사를 나누었다.
#.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듯하고
손 잡아도 멀리 있는듯한 친구,
#.
신학을 공부하고도
목회의 길을 버린 채
제 안에
조그만 성전 하나를 간직하고 사는 친구,
#.
그 친구가
시골 방에 걸어 두게
글 하나를 써 달라고 했다.
#.
뭐가 좋겠냐?
이거 어때?
「하느님 한고뿌 하실래요?」
#.
그노무 한고뿌,
#.
이제 진짜 늙어가나?
보고 있으면 맘이 썩 편해지는 그 친구와 헤어질 때 마다
괜히
찔끔 울고도 싶어 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