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싫어

햇꿈둥지 2021. 4. 4. 05:23

 

 

#.

일년만의 만우절을

진실한 거짓말 하나 하지 못한채

헛되이 탕진하고 말았다.

 

#.

어쩐지

거룩한 만우절을 유기한듯 하여

죄송함을 금 할 길 없다.

 

#.

비 소식에 등 떠밀려

허둥지둥 밭을 간다.

 

#.

어루만지듯 갈고

빗질하듯 이랑지어

공손하게 감자를 넣는 산골 의식,

 

#.

신앙보다 경건하다.

 

#.

사람도 기계도

작년보다 한해씩 더 늙고 낡아

더듬어 고치는데 한나절,

 

#.

아직 내 손으로 고칠 수 있다는 거

장하고 대견한 일이다.

 

#.

산 아래 마을의 길가에 벚꽃이 흐드러지던 날

때 맞추어 비가 왔으므로

질척한 꽃 향기가 발아래 흥건했다.

 

#.

비 오시거니

화사한 벚꽃 아래

노란 우산

빨간 우산

찢어진 우산... 들이 알록달록 꽃만큼 예쁘다.

 

#.

겨울에 지치고

코로나로 외로웠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잠시의 시간들이 웅성하고 성대하다.

 

#.

1학년 아이의 생일,

학교를 가지 않아야 한다는 거였다.

학교 선생님이 

개교기념일은 학교 생일이라 하루 쉰다고 했으므로

내 생일에도 쉬어야 한다는 대꾸,

1학년

참 만만치 않다.

 

#.

시내 나들이를 다녀오는 아내 손에

이렇고 저런

모종들이 들려오기 시작했으므로

농사철도

농사꾼도

이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눈개승마를 시작으로

산마늘 잎과 머위잎 무침과

온통의 봄나물들이 삶아지고 무쳐진 초록밥상,

 

#.

긴 겨울을 건넌

푸른 보상이다.

 

#.

블로그 글쓰기를 열면

"제목을 입력"하라는 안내어가 강압적이고도 친절?하게 뜨는데

딱 한 번쯤은 

싫어...라고 머리를 흔들고 싶었었다.

 

#.

그런데

제목이 뭐지?

죄목만 많은 세상을 살아온 터라···

 

#.

하루 낮 하고도

밤새

비 오셨다.

 

#.

꽃과 봄이

하염없이 녹아내려

둥실둥실 떠다니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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