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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거주춤 오리걸음으로
느릿느릿
풀을 뽑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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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렸던 초롱무와 얼갈이를 솎아
새소리 버무려
담담한 김치 한 통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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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봄에 씨 뿌렸던
감자 몇개
배추 부침 한 접시가
비 속의 점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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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유목인 창파족의 삶을
다큐 프로그램으로 잠깐 본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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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의 주름 깊은 얼굴과
고단해 보이는 그들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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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르는 염소와 양을 끌어 안아
사람과 짐승의 살이가
반듯하게 구분 되지 않는
질박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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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생각해 보니
그들의 삶이 피폐한 것이 아니라
내 사는 방식이
사람 본연의 굴레 밖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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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 밖의 일들을
문명
또는 문화라고 이름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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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너무
흥청망청 살고 있는거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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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늘 보던 아이들이
엄마의 연수 때문에 휴일 잠깐 들어 오던 날,
혹시 겹치기 일을 만들까 싶어
알림판에 짤막하게 적어 두었더니만
정우가 그 아래 덧 붙인 글
'힘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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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풋 걱정이
또
깨물고 싶은 사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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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십분 장대비를 퍼 붓다가
다시
한 시간쯤 쉬기를 반복하는 게릴라 비로
온 종일이 질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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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 속에
종이를 펼쳐 놓고 글 한줄 쓰기,
물속 같은 습기 속에
번짐,
또 번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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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깃을 세우기 시작한 아기새들도
7월 창공으로 떠날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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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푸른날들이 낙수져 글썽하니
세월의 등 뒤에서
그저 손이나 흔들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