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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골 정착기[3]

햇꿈둥지 2005. 5. 12. 17:07
눈이 온다

이곳으로 옮기기 전 어느 해 설이었는지,
명절 휴가로 여주를 향 하던 중 설 전의 여유 일 몇일을, 기다리는 어머니 무시하고 우리 좋은대로 떼어 먹자, 이렇게 결의한 아내와 나는 오대산 속 방아다리 약수를 향해 무작정 떠났고
그리고
그 풍성한 눈에 감탄을 연발 하면서
뒹굴고 뒹구는 낭만에 흠뻑 빠졌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이 소토골에서
그렇게도 기다리고 원하던 눈에,눈 속에 빠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히
철딱서니 없는 우리 부부는 그 눈 속에서 환호했다

"야~호~오 눈이 온다 눈.눈.눈..."

그 다음 날도 또 눈이 왔다

그 다음 날,다음 날도 또 눈이 왔다

우리는 지쳤다
이제 눈이 오면 땀 뻘 뻘 흘리면서 오름 길의 눈을 치워야 한다는 예각의 현실을
더 무겁게 받아 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눈 오는 하늘을 우러러
"A~C 또 눈오네..."이렇게 바뀌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 겨울이 끝난
세번째의 봄 날
우리 부부는 심각하게 머리를 맞대었다
포도나무는 이제 깡그리 절명해서 포도는 커녕 머루 하나 달리지 않고
지난 해 남은 힘을 다 해 매달았던 빈한하기 짝이 없는 포도송이 몇 몇은
쭈그렁 건포도가 되어 매달려 있으니...
드디어
제멋대로의 경사와
모난 돌들을 잔뜩 끌어 안고 있는 이 비탈 밭을...정리해 보자
정리해서
한사코 사정을 해야 밭을 갈을 수 있는 쟁기와 소에 의존하는 경운 방식을 집어 던지자

이렇게 결정해서 포크레인을 알아 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난 사람이 스테파노였다

우리에게는 인연의 고리,

스테파노에겐 인연의 골,

참으로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람의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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