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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골 정착기[2]

햇꿈둥지 2005. 5. 12. 17:05
애초에 구한 땅의 넓이가 3.750평인데
삼일 굶은 사람 큰 고기덩이 골라 잡듯...은 아니고
아내의 설명 속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반을 잘라 아랫 부분만 팔자고 내 놓은 땅이나
이 후에라도 윗 부분의 땅이 팔리고 나면 지금 이 상태에서 치악산이 뒷산이 되는 천혜의 조건이 상실되지 않겠느냐?...
다달이 봉급 따 먹기 외에는 특별한 재능도 없고
이재에 뛰어 난 머리가 있는것도 아니니
그저
잘 했군 잘 했어...뿐인데...

첫 봄 부터 엄청 난 걸림 돌들과 숱한 시행착오를 범하게 된다

밭의 맨 윗쪽 부분,
즉 치악과 연이어진 경사밭 2000평 가량은 전에 살던 분이 포도밭을 조성해 놓았는데
포도,
도시에 살면서 사다 먹을 줄이나 알았지...그러니 그저 나무 있으면 저절로 달려서, 익어서, 먹으면 되겠거니 했는데,
이거 상황이 만만치 않다
전지를 할 줄 아나?
시비를 할 줄 아나?
때 맞추어 손 질을 할 줄 아나?
급기야 포도밭 전체가 무슨 무슨 넝쿨 식물에 감기고 덮이기 시작 하더니 서서히 고사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몇번,
제 스스로의 힘을 다해 탐스런 포도 송이가 익어 갈 무렵
산골 여우처럼 어슬렁 어슬렁 포도 송이를 탐내다가
돌무덤 사이며 밭고랑에서 출몰하는 뱀에 놀라 줄행랑을 경험한 뒤로는 저 아래 움막쯤에서 올려다 보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면사무소에서 판단한 결과이겠지만
농사 경험 없는 젊은 도시 사람이
그것도 전업농을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닌 사람이 지나치게 넓은 땅을 샀다...
이런 판단에 의해서였는지
우리는 요 감시 대상이 되어 있었다

수시로 면사무소 직원이 드나들며
포도 나무의 상태며,밭을 가꾸어 가는 문제로 시비를 걸기 일쑤였다
어느 날인가는 불쑥 내 집 들어서듯 찾아 온 젊은 면사무소 직원이
"포도 나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니 다 죽지 않느냐?"고 자식 나무라듯 반 말 섞은 핀잔을 주기도 했다

화가 난다
정말 화가 나서
"이거 봐 젊은 친구! 산 속에 머루,다래는 관리 잘 해서 달리냐?"고 억지 대꾸를 하기도 했었다

더더군다나 문제는
먼저 살던 분이 농사는 생각없이 원주 시내를 넘나 들며 음주 경연대회에 심취한 나머지
이 넓은 땅을 3년간이나 묵밭으로 묶어 두었으니
푸른 초원임은 분명한데 온통 쑥밭,아니 쑥대밭이다
이 지경을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도대체 이 쑥의 뿌리들은 엉기고 질기기가 어찌 대단한지 삽날은 커녕,
어찌 갈아 엎을 방법이 없었다
손 써서 정리 해 볼 방법이 없음을 "쑥대 밭이 되었다"는 표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당초 땅 생김새대로의 경사며 구거며 돌덩이들이 제멋대로 자리 잡고 있는 이 땅,
피 하고 피 해서 갈아 엎을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밭으로 만들기 위해
마을의 선영이 형님께
밤 늦도록 막걸리 따라 가며 청 하고 청 하고...
그 부탁의 말 들이 간곡해 지는 만큼 청구하는 일당의 액수가 커지거나 말거나
이려~ 이려~
소를 몰아 두번 세번씩 왕복하며 쑥 아래의 고운 흙들이 뒤집어져 밭이 되어가는 모양을 보며
그저 감사한 마음 뿐이었다

일 끝난 자리,
이 쑥맥인 도시 촌놈을 앞에 앉혀 놓고 거나하게 술 취한 목소리로
"자네가 하두 애걸을 하니 갈기는 가네만...이거 나나 하니까 이렇게 라도 해 주지..."
마음 그 깊은 곳의 단순함과
평생의 산골살이 언제 이렇게라도 남 앞 흰소리가 가능 했었으랴...그저 감읍 할 뿐 인데

어느 여름 날 토요일 쯤,
마을 동갑내기인
이장,새마을 지도자
또 특별한 일거리 없이 그저 공술 자리면 귀신 같이 참석하는 한석이...든가?

전화가 왔다

"오늘은 반공일 이라 일찍 왔나보네?"

[응, 그런데 뭔일로 다 들 모였어?]

" 아~그냥 술 한잔 하다가 집에 들어 왔나 싶어 전화 했지, 내려 오라구...'

마을엔 변변한 가게가 없었다
부녀회 가게 라고 이름 지어진 어느 집에서 그저 술 이나 과자 정도를 파는 집 외에는...
아무래도 신고식을 유도하기 위한 술 시비 정도로 느껴진다
뙤약 볕 쨍쨍한 마당을 피해 메뚜기 이마빡 만한 추녀 아래
그늘과 땡볕을 반반쯤 섞어 펴 놓은 술상이란게
감자 볶은 것 쪼~오~끔,
PET병에 담긴 소주 한 병...

대충 마시면 쉬는 날 마다 이런 술 자리에 초대 될 것이 뻔하다...

호기를 부려서,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박스, 맥주 한 박스, 술 잔은 대접으루 다섯개 주시구요~]

맥주 한 병
소주 한 병을 섞어 따르면 한 잔이 되는 술잔이다

"어허~ 이거 폭탄 주 아이래?~"
[마셔 봐, 마셔 봐]

더운 여름 날 시원한 맥주와 소주의 어울림은 독하기야 어찌 됐든 시원함 만으로 각 각 두세잔쯤의 들이킴으로 진행은 되었지만...
한꺼번에 몰아 닥치는 취기는 견디기 어렵다, 나 또한 마찬가지...
엉거 주춤 인사 없이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생기더니 급기야 나 혼자만 남았다
객기로
아주머니의 휘둥그런 눈 길 속에서 한 잔쯤을 더 비우고...

다음 날 늦은 시간까지 까무러쳤었다...

눈을 뜨자 마자 전화 하기,

어제 그 술자리로 날 불렀던 친구들
일일이 전화해서
그 집으로 다시 나와라 해장 해야지...

나온 사람 아무도 없었고
그 이 후로
길에서 마주치면 "어이 술 한잔 해야지"하고 권해는 봤으나
모두들 낮 도깨비 보듯 피하고 마니 이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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