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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골 정착기[1]

햇꿈둥지 2005. 5. 12. 17:04
굴곡 심하고 경사 심한 움막의 오름길로 이삿짐을 옮기던 날,

비가 왔는지
혹은 눈이 내렸는지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4월의 넷째날 임에도

추웠다

낯 설고 낯 설고 낯 설어서
등 시리고 외롭게만 느껴지는 마을 풍광들
큰 짐은 경운기로, 작은 짐들은 마을 분들의 등짐으로 옮겨야 했는데
마을회관 방송으로 모이신 마을 분들 대부분은 이삿 일을 도와 준다기 보다는
도회지에서 들어 왔다는
그리하여 이 마을 평균 연령대를 획기적으로 낮추는데 기여한
정신 나간 젊은 부부의 세간살이 구경 정도로 모인듯...보였다

이건 뭐
저건 뭐
뒤뚱거리는 경운기로 실어 올린 피아노를 헛간 한구석에 넣으며
자기들끼리의 은밀함으로 등 돌린채 나누던 헛 웃음도 보았다

식기 세척기를 이상한 냉장고라고
만져 보고 두드려 보는 아주머니들 뒤에서 비로소
도시에서의 보잘것 없던 우리 살이가 이 마을의 보편적 기준에 달해 있는 것이 아님을 깨우치기 시작하고
그 깨우침들은 조심스러움으로 변해가기 시작 했었다
마을에서도 뚝 떨어져 산 속에 덜렁 하나 있는 집,
내 어릴때의 기억으로 마을에서도 이렇게 외진 집은 [외딴 집]이라하여 마을 일원을 구성 하는데 문제가 있거나 더러는 결격 사유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그 외로움을 당연한 형벌로 이겨내며 살아야 하는 경우 였었다
어쨌든
운집해 구성된 마을과 적지 않은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사방으로는 늘 마을 누군가의 엿 보는듯한 시선들이 느껴졌었다

그런데도 외로움의 무게는 훨씬 더 커진다...그것 참...

더우기
움막 오름새의 길들이
몇 집?
네 집쯤의 남의 땅이니 차로 드나 들기는 언감생심,
석유를 사든,시장을 보든
몽땅 마을회관 앞에서 부터 들어 날라야 했다
이런 류의 몸이 힘든 일은 그저 부정기적으로 겪어내면 되는 일이었는데
도시의 아파트에 살던 몸,
어디 고장나고 불편하면 관리 사무소에 전화하면 됐었고 바람 불면 문 꼭 닫으면 됐었고
비 좀 온대 봤자 15층 아파트의 1층 이었으니 지붕이 장 장 15겹이라 걱정은 무슨 걱정...이랬었는데

생소하고
생소하고
생소한 이 산 속에서 사계절 아무 경험 없이 허술하기 그지 없는 움막 안에 봉황의 알 같은 처 자식을 두고 첫 발을 떼었으니
주변의 조그마한 변화에도 온 몸의 신경이 고무줄처럼 팽팽히 당겨지기 일쑤였다

일기를 써서
자료를 만들자...이렇게 결심을 하고 열심히 실행을 했으나
한 해를 지나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싯점에서 모두 집어 던져 버렸다

인간의 행위는 사계에 맞추어 반복적으로 이루어 질지라도
자연은 어느 것 하나 똑 같은 시나리오로 똑 같은 행위와 현상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
이 것 때문 이었다

정작으로 힘든 일은 사람의 일이었다

이삿 짐이 대충 정리되어 가던 일주일 후 쯤이었나?
원로급 마을 어르신 몇 분이 집엘 들르셨다

거의 청문회 수준,

물으시기를
"어디 도시에서 사업하다 망해서 야반 도주 했나?"
[아닙니다. 사업이라고는 결혼 전에 아내를 얻기 위한 연애 정도가 전부였고 건강한 의식으로 물,불을 안가리고 일하는 이 나라의 공무원 입니다]

-첫번째 질문 이견 없이 통과-

"이런 시골에서 요양을 해야 할 만큼 몸에 병이 있나?"
[병 이라고는 아내와 연애 중에 상사병을 잠깐 앓았던 병력이 있으며 아내 또한 세숫대야 크기의 밥 그릇을 써야 할 만큼 건강,튼튼 합니다]

-두번째 질문 심드렁 하게 통과-

"애들이 공부도 못하고 속 썩이나?"
[아닙니다. 잘은 못 하지만 열심히 하고 있고 남을 때려 주기 보다는 줘 터지는 날들이 더 많습니다]

-결론-
뒷 짐 지으시고 내려 가시며 하시는 말씀

"젊은 사람들이 미쳤구먼, 여기서는 자네 같이 직장 있고 그러면 아이들 데리고 시내로 나간다네, 어찌 세상을 꺼꾸로 사는 사람을 만났네 그랴~"

* 주 : 상사병의 자가 진단 방법
1. 중사.하사를 보면 어떤 방법으로든 못 살게 건드려 보고 싶고
2. 병장 이하 사병들을 보면 그저 웃읍고
3. 소위.중위.대위들을 보면 괜히 아니꼽고
4. 소령 이상의 장교들을 보면 기분 더러워지는 병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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