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함께 가는 길,

햇꿈둥지 2022. 10. 30. 07:55

 

 

#.

바람처럼 

시월이 비워졌다.

#.

달력은 헐렁하고

세월은 묵직하고

#.

나뭇잎들이 허공에서 쏟아져 내려

보도의 삭막을 점묘하고 있었다.

#. 

그걸 한사코 사진에 담겠다고

발걸음 멈춘 채

이리 째려보고

저리 찍어 보고

#.

새로 정한 걷기의 산길은

가을의 사타구니로 향해 있었다

#. 

아이의 돌날,

하루 전 시간을 여벌로 얹어

손 윗 동서 댁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아침상 준비 과정이 이채롭다.

#.

처형이 달걀을 꺼내면 동서는 프라이팬을 대령하고

고기를 꺼내면 칼과 도마를 대령하고

#.

입 속의 혀 처럼

혀 끝의 꿀 처럼,

#. 

"···떨어진 은행나무 잎은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이라고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내뱉은 요절한 시인의 구시렁 때문인지

가로 청소원이 아주 힘센 송풍기로 나무 아래의 낙엽들을 함부로 쓸어내고 있었다.

#.

허공에서 놓아버린 낙엽들이

이젠 땅 위에서 마저 몸 둘 곳을 모른 채

우왕좌왕 흩날리니 

이 쪽도 저 쪽도 온기 없는 시월의 끝날,

#.

창 밖엔

11월의 서른날들이 잔뜩 옹크린 채 문틈을 엿보고 있다.

#.

서리 내린 아침

윗 밭에 올라 냉이 다섯 뿌리 얻어

된장찌개를 끓였고

그 맛,

환장할 만큼 환상적 이어서

#.

어느 날 문득

뒷 산 신령님이 마실을 오신대도

그저 시침이 똑 뗀 채

나 혼자만 먹기로 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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