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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시월이 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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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은 헐렁하고
세월은 묵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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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들이 허공에서 쏟아져 내려
보도의 삭막을 점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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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한사코 사진에 담겠다고
발걸음 멈춘 채
이리 째려보고
저리 찍어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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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정한 걷기의 산길은
가을의 사타구니로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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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돌날,
하루 전 시간을 여벌로 얹어
손 윗 동서 댁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아침상 준비 과정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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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이 달걀을 꺼내면 동서는 프라이팬을 대령하고
고기를 꺼내면 칼과 도마를 대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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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혀 처럼
혀 끝의 꿀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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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은행나무 잎은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이라고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내뱉은 요절한 시인의 구시렁 때문인지
가로 청소원이 아주 힘센 송풍기로 나무 아래의 낙엽들을 함부로 쓸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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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서 놓아버린 낙엽들이
이젠 땅 위에서 마저 몸 둘 곳을 모른 채
우왕좌왕 흩날리니
이 쪽도 저 쪽도 온기 없는 시월의 끝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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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엔
11월의 서른날들이 잔뜩 옹크린 채 문틈을 엿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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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내린 아침
윗 밭에 올라 냉이 다섯 뿌리 얻어
된장찌개를 끓였고
그 맛,
환장할 만큼 환상적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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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뒷 산 신령님이 마실을 오신대도
그저 시침이 똑 뗀 채
나 혼자만 먹기로 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