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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등짝의 낙서 처럼...

햇꿈둥지 2005. 5. 11. 17:22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느끼는 낳음과 만남의 비중은 어느 정도나 될까?

사실은 나 혼자 설정한 기준에 준거한 억지의 표현이 "낳음과 만남"이다

 

8일과 9일 주말이자 이틀의 휴일인 그 시간에 엄마의 생일 축하를 위해 아들,딸이 잠시 회귀(?)의 아량을 베풀어 준 것 외에

이제 시집을 가도 될 만큼 의젓하게 자란 지애며

오월 첫날 신부가 된다는 조카 녀석이 혼약을 한 등판 넓직한 사내 녀석 앞세워 치악을 찾아 왔고, 이쯤의 분위기에 어인 일로 들러리는 세웠는지 막내 처제까지 아이들 종 종 손 잡고 들이 닥쳤으니

거의 잔칫집 분위기라...

 

"낳음과 만남"이라는 어줍잖은 표현을 들먹인 이유도 또 그렇다

두 아이 낳아 이날껏 키워 온 일이 전부인데

이리 저리 얽히고 맺힌 인연들이 실가닥 처럼 어지럽고 따듯하니 번잡하기 까지한 조카 녀석이며 인연의 끈에 얽혀 우리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 속에서의 등 따듯함은 참 행복한 일이다

허긴

내 아이들 낳음의 선행 조건 속에는 아내와의 만남이 전제 되어야 하니 그럴싸 하긴 해도

"낳음"이란 것도 표현 상의 고집일 뿐,

결국은 만남 이겠거니...

 

둘만의 삶이 호젓함 이라고 큰 소리는 떵 떵 쳐 봤었으나

이쯤의 분위기가 되고 나면 무조건 허허 껄껄 유쾌해서

기다렸었다고

모두들 사랑 한다고...발가 벗겨진 가슴으로 연신 허물 없는 고해를 늘어 놓으며

이런 저런 번잡한 일들의 틈에서 조차 행복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한다는 걸...

이제 우린 너무도 잘 안다

 

이제 내 것은 없다

다 너희들 것이다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실제로 그렇게 주린 배로 허리가 꼬부라 지도록 일상에 진을 빼며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그 힘겨운 평생 건너기에 대한 공치사 이거나 아니면 그저 엄살과 허풍이 섞인 죽는 시늉으로라도

자식들 가슴을 조금만 후벼 파 보기라도 하지

어쩜 그렇게 누운지 삼일만에 꼴까닥 죽어 버린 내 어머니 살아 온 날이...이젠 내 앞 날 들이구나...

 

어둔 마당 귀퉁이에 동그마니 쪼그려 앉아서는

그 유리창 넘은 안쪽

싱그러운 아이들 깔 깔 깔... 맑은 웃음이 너무 끈끈하게 느껴져서 또 슬퍼졌었다  

 

아이들 떠나는 다음 날 ,

물기 마른 밭에는 다 늙어 빠진 쭈그렁 갈색의 마을 할멈들이

굳이 따로 허리 펼 것 없이 딱~ 들어 맞는다 싶게 굽은 허리로

감자 씨를 놓거나

모서리 날카로운 돌을 줏어 내거나...

 

떠나고 정리해야 할 목숨들이

황사 바람 아래서 뿌린 씨앗들,감자 싹들...이 푸르게 들을 덮어

봄은 여름이 되고

여름은 가을이 되고

 

만남은 무엇이고

떠남은 또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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