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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냄새가 다분한 등화관제를 빌려
월화관제라도 해야 겨우 잠들 수 있는
낙망적인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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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마다
그 치렁한 빛에 시린 이슬 내리고
선잠 깨어 자꾸 뒤척이게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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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리웠던 이들은
이제 모두 세상에 있지 아니하니
기억 속에 압착되어 있는 누군가를 꺼내는 일은
온통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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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동안의 햇볕은 셀로판지처럼 투명하고
달빛은 또 치렁하니
그저 그리움을 핑계 삼아 한 삼일 성실하게 앓아도 좋은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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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시집 한 권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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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 대한
백수의 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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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웠던 여름은 세월의 나이테 속에 갇혀 버리고
그토록 수다스럽던 매미들도
폐가의 거미줄에 박제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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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전상서,
엽서 한 장 날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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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 당도한 이들도
이승의 사람들을 그리워하나요?
아님
나만 홀로 쌩으로 그리워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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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신 거 아니까
뭐 꼭
답장은 안 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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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저 달빛 다 이즈러지면
난 또 무얼 핑계 삼아 그리운 한숨을 쏟아낼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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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러지면... 은
이지러지면... 의 비표준어라고 나오는데
이 세상 다 표준대로 돌아가지 않는거 뻔히 아니까
난 이즈러지면으로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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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아무리 깐깐한 구거 사전이라도
이 정도는 이해해야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