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기어이 시월,

햇꿈둥지 2021. 10. 2. 05:09

 

#.

기어이

시월이 되었구나

바람은 조금 더 냉정하게 갈기를 세울 태세이고

문득

치악 마루는 가을색,

 

#.

등때기에 암자 하나 짊어진 

덩치 큰 앞산이 

잔뜩 옹크려 있고

 

#.

마당가 고로쇠나무는

정수리부터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

낙엽 지는 일 조차

위계적이다.

 

#.

신 새벽

소란스런 뇌우에 잠이 깼다.

 

#.

가을 물들이기가 아닌

가을 길들이기부터 시작할 모양이다.

 

#.

올 가을

요란하게 오신다.

 

#.

홀아비 친구의 안부가 궁금하여

김치찜 한 냄비 들고 마실을 간다.

한 동안의 격조가

제법 짭조롬 얼큰해서

 

#.

쐬주 한병 비워진 뒤

관절 싱싱했던 젊은 날들이 무너지고

두병 이후

푸르렀던 청춘이 장렬히 전사하더니만

세병쯤의 빈병이 자빠질 무렵

온 생애의 날들이 불콰하게 꽐라 되야부렀다.

 

#.

김장감으로 뿌려진

알타리와

무와

또 또 또... 를 솎아 낸 것들이

밥상 위의 김치가 되고 나물이 되어

구월 건너 시월,

 

#.

이제 그만

시장 꼬부랑 할머니가 인심 좋게 담아내는

뜨끈한 칼국시 한 그릇 후루룩 들이키고 싶다.

 

#.

물론

칼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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