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어이
시월이 되었구나
바람은 조금 더 냉정하게 갈기를 세울 태세이고
문득
치악 마루는 가을색,
#.
등때기에 암자 하나 짊어진
덩치 큰 앞산이
잔뜩 옹크려 있고
#.
마당가 고로쇠나무는
정수리부터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
낙엽 지는 일 조차
참
위계적이다.
#.
신 새벽
소란스런 뇌우에 잠이 깼다.
#.
가을 물들이기가 아닌
가을 길들이기부터 시작할 모양이다.
#.
올 가을
참
요란하게 오신다.
#.
홀아비 친구의 안부가 궁금하여
김치찜 한 냄비 들고 마실을 간다.
한 동안의 격조가
제법 짭조롬 얼큰해서
#.
쐬주 한병 비워진 뒤
관절 싱싱했던 젊은 날들이 무너지고
두병 이후
푸르렀던 청춘이 장렬히 전사하더니만
세병쯤의 빈병이 자빠질 무렵
온 생애의 날들이 불콰하게 꽐라 되야부렀다.
#.
김장감으로 뿌려진
알타리와
무와
또 또 또... 를 솎아 낸 것들이
밥상 위의 김치가 되고 나물이 되어
구월 건너 시월,
#.
이제 그만
시장 꼬부랑 할머니가 인심 좋게 담아내는
뜨끈한 칼국시 한 그릇 후루룩 들이키고 싶다.
#.
물론
칼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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