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꿩 대신 닭,

햇꿈둥지 2020. 10. 21. 07:59

 

 

 

#.

길가의 구절초 조차

꽃잎을 늘어뜨렸으니

겨울 같은 가을,

 

#.

하루 종일

이 일 끝에 다시 시작해야 하는 저 일과

일 하는 중에 눈에 뜨이는 일들과

여름 내 밭 속에 버려져 있던 농구와

도대체 온통 헝클어져 보이는 일상의 주변을 정리하는 일로 지쳐

해 넘을 무렵 손발을 씻고 자리에 누우면

구름 위에 누운 듯 아득하기도 하다.

 

#.

그러나

잠으로 씻긴 몸은 어제의 통증들 모두 털어버린 채

또다시 이 일과 저 일에 매달리게 되니

 

#.

만병 중 으뜸은

골병이 맞다.

 

#.

지난 여름 길었던 비 탓인지

고구마는 왕성한 줄기에 비해

거두어진 량이 터무니없이 적어서

 

#.

꿩 대신 닭,

고구마 줄기를 잔뜩 거두었다.

 

#.

그중에

줄기 끝에 매달린 어린 새순의 무침은

저녁 밥상을 황홀하게 했다.

 

#.

밤송이들은 대부분 쭉정이,

밭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 내는 일로 수고롭다.

 

#.

서편 저녁 하늘에

구름 따라 흘러가듯

둥실

초승달이 걸렸다.

 

#.

마당 한켠을 머리 빗듯 곱게 쓸었으니

이제 그만 누옥의 문을 닫고

오래 덮어 두었던 책 한 줄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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