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가을 껌딱지

햇꿈둥지 2020. 10. 24. 13:50

 

 

#.

지난해 심었던 마늘 다섯 접은

우리 둘에 더하여 아이들과 가까운 형제들의 일용할 양념이 되었으므로

올해도

마늘을 놓는 일이 제법 우선의 일이 되었다.

 

#.

두 사람이 가꾸어

열 사람이 나누어 먹는 일,

힘든 일들을 줄이라고는 하지만

힘들어 주저앉으면 자연스럽게 못 하게 되는 일,

그게 농사인 것 같다.

 

#.

위 아래 밭의 부실했던 뒷 설거지가

몫일이 되어 버리고도

 

#.

부숙 퇴비를 지게로 져 옮기고

미리미리 마늘 비료를 뿌려 두고

그리고

꼼짝 않고 누운 채 여름을 보낸 농기계들을 깨워

밭을 가는 일,

 

#.

아내가 재 넘어 대처로 볼 일을 보러 나간 사이

늙은 소에 쟁기 메어 밭을 갈듯이

늙은 경운기로 한나절 밭을 간다.

 

#.

이제 제법 철이 들어

힘겨운 일은 아내 없는 새

우렁 서방처럼 홀로 해 내곤 한다.

 

#.

어줍잖은 코딱지 농사일 보다

아내 손으로 만들어지는 가사의 비중이 훨씬 더 크니

생색 낼 일이 아닌 당연함 이겠다.

 

#.

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낙엽이 쏟아지고

투명한 햇살이 빗살로 쏟아지는 산골

상쾌하고 평화롭다.

 

#.

먼지 가득한 옷을 털고

흐르는 샘물에 얼굴을 씻을 무렵

또르륵 전화 한 통,

"보고 싶어요~"

오랜만에 쌍둥이들이 온다는 호들갑스런 기별,

 

#.

내 인연의

소중한 껌딱지들,

 

#.

이 나이쯤에 아직도 설렘이 있어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행복하다.

 

#.

산중 누옥이 잠시

요란법석하여 따듯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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