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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구절초 조차
꽃잎을 늘어뜨렸으니
겨울 같은 가을,
#.
하루 종일
이 일 끝에 다시 시작해야 하는 저 일과
일 하는 중에 눈에 뜨이는 일들과
여름 내 밭 속에 버려져 있던 농구와
도대체 온통 헝클어져 보이는 일상의 주변을 정리하는 일로 지쳐
해 넘을 무렵 손발을 씻고 자리에 누우면
구름 위에 누운 듯 아득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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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잠으로 씻긴 몸은 어제의 통증들 모두 털어버린 채
또다시 이 일과 저 일에 매달리게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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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 중 으뜸은
골병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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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길었던 비 탓인지
고구마는 왕성한 줄기에 비해
거두어진 량이 터무니없이 적어서
#.
꿩 대신 닭,
고구마 줄기를 잔뜩 거두었다.
#.
그중에
줄기 끝에 매달린 어린 새순의 무침은
저녁 밥상을 황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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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송이들은 대부분 쭉정이,
밭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 내는 일로 수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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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 저녁 하늘에
구름 따라 흘러가듯
둥실
초승달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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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켠을 머리 빗듯 곱게 쓸었으니
이제 그만 누옥의 문을 닫고
오래 덮어 두었던 책 한 줄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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