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겨울 낭만을 위하여

햇꿈둥지 2020. 10. 8. 05:33

 

 

#.

일찌감치

겨울에 코뚜레를 끼우기로 했다

 

#.

그리하여

매년의 경우처럼

겨울에 멱살 잡혀 허둥지둥 끌려가기보다는

겨울 앞에 서 서

겨울을 끌고

추위 속으로 당당히 들어서겠노라고

 

#.

가을부터

일찌감치

이곳저곳을 손질 중,

 

#.

집 지은 지 스무 해가 더 되어 가는데도

급하지 않음을 이유로 내동댕이 쳐 놓았던 것들을 

두서없이 엄벙덤벙 해 치우는 일,

 

#.

도리 아랫부분 흙벽이 마르며 생긴 틈새와

구들방 구석 연기 새는 곳과

안과 밖 전구 교체와

 

#.

집 주변 주변

폐가의 거미줄을 걷어내고

여름 며칠의 노고 끝에 내팽개쳐진

농기계들을 치장해 두고

 

#.

산골짜기 두 사람 살이조차

이토록 손질할 일이 많으니

사람 살이는 참 번잡한 일이다.

 

#.

하는 길에

햇볕에 삭은 나일론 빨랫줄을

산뜻하게 바꾸었더니

 

#.

아내의 입 벌어진 칭찬은

덤,

 

#.

근 십여 년을 함께 낡아가던 지게가 망가졌으므로

다시

새 지게를 하나 장만한다.

 

#.

어깨에 불끈 힘을 모아

삭풍이 옷섶을 헤쳐대는

겨울 산을 져 내려

누옥의 가난한 방을 덥히리라.

 

#.

그 온기 속에

안온함을 도모하여

궁노루 한숨처럼 우는 깊은 밤들을

곱디 고운 꿈으로 엮어 낼 수 있다면

 

#.

겨울이

제아무리 춥고 긴들

낭만 이거나 

더러는

낙망쩍 겨울 놀이가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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