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가을걷이

햇꿈둥지 2020. 9. 23. 14:09

 

 

#.

수 삼년 빈집의 장독대 같은 꼴을

이젠 좀 정갈하게 정리해 보리라고

 

#.

까짓것 두어 시간이면 하고 덤빈 일은

한나절 땀 흘림 끝에 마무리되었다.

 

#.

땀 흘리는 길에

아래 윗 마당 뜨락의 어지러운 풀들과

얽히고설킨 덩굴들을 걷어내는 일,

 

#.

그리고

아버지를 흉내 내어

베어서 함부로 널어놓았던 댑싸리로

빗자루 몇 개를 묶었다.

 

#.

비로소

마당 쓰는 맛이 느껴진다.

 

#.

싹을 키워 

심어서

키우고

거두어

온 정성으로 말린 뒤에

꼭지를 떼어낸 후 곱게 빻아야 먹을 음식이 되는 고추,

 

#.

거실에도

이 방과 저 방에도

신발 속에도

침대 위에도

책갈피에도

강아지 콧등에도

온통 고추씨,

 

#.

아내가

뒷밭의 배추 몇 포기를 골라

햇 고추가루로 김치를 담근다기에

 

#.

홀로

집 주변 주변

발에 치이는 대로 종종거리다 보니

 

#.

벌인 일은 가을걷이

사람 꼴은 가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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