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구월 뜨락

햇꿈둥지 2020. 9. 5. 17:35

 

 

 

#.

저어기 깊은 산 승가람에서

큰스님 말씀을 골라 휘호대회를 한다고

서실 동무 모두들 준비에 바쁘다.

 

#.

사실은

휘호대회를 구실 하여

어지러운 코로나 틈새를 잠시 벗어나고 싶을 뿐,

 

#.

어쩌다

상을 타게 된다면

그 돈으로

장터다방 늙은 마담에게

도라지 위스키 한잔 보시 해야겠다.

 

#.

산골짜기 아침 기온은

십삼 도쯤,

 

#.

지난번 태풍을 찜 쪄 먹을 만큼

엄청 덩치 큰 태풍이 또 올 듯 말 듯 하다가

나라의 척추인 남과 북을 관통 할 듯 말 듯 하다가

어쩌면 동해로 갈 듯도 하다고

티비마다 자신없는 호들갑,

 

#.

큰 태풍 지난 뒤면

성의 표시 정도의 가을이 지나가고

그리고 이내 겨울이 될 것 같다.

 

#.

무엇을 하기도

어디를 가기도 

그저 심드렁한 날들,

 

#.

코로나 후유증이다.

 

#.

손톱 밑에 먹물이 들도록

하염없이 글을 써 봐도

앞 글씨 뒷 글씨 모두 그놈이 그놈

세월 같은 파지만 쌓이고 있다.

 

#.

치매로 십 년 넘어 고생하시던

아랫집 할머니께서 바람 몹시 불던 날 아침

하늘로 가셨다.

 

#.

십 년 넘도록 간병에 지쳐 가던 

허리 굵은 며느리 얼굴에

비로소 웃음기가 생겼다.

 

#.

산다는 건

살아 있다는 건

죽음보다도 거룩하지 못한 참담한 시대,

 

#.

조금 이르게 선영 벌초를 했다.

바쁜 아이들 모르게

늙어가는 형제 둘이 군사작전처럼 해 버렸다.

 

#.

뭔 일이라도 만들어서

코로나 틈새를 헤집어 보고 싶은 거다.

 

#.

산골 뜨락의 산초 열매가

이제 뱀의 눈처럼 껍질을 벗을 모양이다.

흐렸거니

구월 하루가 말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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