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꽃 보다 꼬추

햇꿈둥지 2020. 8. 24. 15:41

 

 

#.

비 그친 뒤부터

아침 한나절은 온전히 마당쇠의 시간이 되었다.

 

#.

우선

장마 내내 빈둥거리던 예초기를 가동하여

마당과

집 주변과

밭둑과

고랑 고랑의 풀들을 베어 내는 일에 더 해

 

#.

김장 배추 모종을 심고

무 씨를 뿌리고

자투리 코딱지 밭에 다시 상추를 뿌리고

 

#.

코로나 상황이 자꾸 나빠져서

스스로 발목에 차꼬를 채우듯

온갖 일거리를 찾아내어

산 중에 몸을 가둬 버렸다.

 

#.

미명의 새벽에 몸 일으켜

서너 시간쯤의 일을 끝내고 나면

이내 땀범벅,

 

#.

밥 주기를 고대하던 고양이가

다리에 꼬리를 감으며 재촉을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

빗 속 하염없는 시간 보내기 끝에

고추를 거두었다.

첫물이고 두물이고 나누고 셀 것 없이

그저 묵묵히 거둘 것이다.

 

#.

햇볕 인색한 날들 속에서도

태양빛으로 붉게 익었으니

거둔 양의 많고 적고를 가늠하기 전에

그저 감사한 마음,

 

#.

해 넘은 어둠 속에

조심조심 반딧불이 나오시고

산 중 밤공기가 제법 서늘도 하니

이제

가을이 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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