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고양이 수난기

햇꿈둥지 2020. 9. 17. 07:29

 

 

 

#.

새벽 운동을 나서는 시간은

산골 마을이 아직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는 때,

 

#.

몇 몇 연세 드신 분들의 창문이

흐린 불빛으로 깨어나고

가끔 창 너머로 들리는 기침 소리들,

 

#.

50분쯤의 걷기를 마치고

다시 내 집으로 오를 무렵,

 

#.

아랫 밭 모퉁이 풀밭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길고 작게 때론 애절하게...

도둑고양이가 어디 몸을 숨기고 있나 보다... 였는데

울음소리의 음색이 낯익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의 풀을 헤쳐 살펴보니

집에 키우는 고양이 초롱이가 피투성이로 울고 있고

앞다리에 걸린 덫,

얼마나 단단한지 손으로는 도저히 벌릴 수가 없어

한달음에 집으로 뛰어와 쇠지레를 들고 내려가

덫에 눌린 다리를 힘겹게 빼어냈다

 

#.

이제 거둘 무렵이 되어가는 논 안에

이리저리 미로 형태의 길을 내어가며 누런 벼들을 망가뜨리고 있으니

농사 지은이의 마음 상 함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사람도 위험할 지경으로

풀숲에 교묘히 숨겨진 흉기들,

 

#.

멀쩡했던 일상의 주변이

위험천만한 지뢰밭이 된다.

 

#.

시내 병원 왕복 달리기로 

깁스에 항생 치료와

 

#.

식음을 전폐하여 누워 계신 통에

고운 미음 쑤어 주사기로 먹여 드리기에

 

#.

지붕 위 태양초는

어제저녁부터 비를 피해 꽁 꽁 싸 매어 둔 채

애먼 일들로 가을볕 아래 동동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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