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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땅의 것들로 목숨 부지를 해서인가
유모차에 매달린 할머니도
삽 한자루 뒷짐에 매달은 박씨 영감님도
모두들 땅의 것들을 살펴 보기 좋도록 허리가 굽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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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아무리 푸르러도
눈부시지 않아 좋으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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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잠 깨어 창밖을 보면 세찬 비가 쏟아지다가
잠시 한데 눈 끝에 다시 보면
시치미 똑 뗀 채 그쳐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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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컴한 방안을 밝혀
글 한줄을 쓴 뒤에
초록 낙숫물로 붓을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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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언제쯤 그칠거냐고
모두들 궁금하다
코로나는 잠시 잊은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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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감탕물과
곳곳의 생채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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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속에
사람의 길과
논밭의 둑이 망가지더니
강아지마져 눈병이 났다
나 보다 더
장마 끝나기를 학수고대 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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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500밀리가 넘도록 올 것이라는 호들갑은
꿈 속의 염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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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 중에도
여전히 500밀리를 넘게 채울듯한 빗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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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모두
기우제 라는 사람의 말을 폐기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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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멀리 추운 나라의
아주 오래 된 빙하가 모두 녹아 버렸다는 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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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사는 문제는
이제 개인적 건강의 굴레를 벗어나
살아 있는 모두의 절박한 문제가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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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의 제습기가
종일토록 빈한한 살림살이를 쥐어 짜서
양동이 넘칠 만큼씩의 물을 뽑아내는
물 속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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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마음이 되어
자주
하늘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