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우중객담(雨中客談)

햇꿈둥지 2020. 8. 6. 14:48

 

 

 

#.

평생

땅의 것들로 목숨 부지를 해서인가

유모차에 매달린 할머니도

삽 한자루 뒷짐에 매달은 박씨 영감님도

모두들 땅의 것들을 살펴 보기 좋도록 허리가 굽어서

 

#.

하늘이 아무리 푸르러도

눈부시지 않아 좋으시겠다 

 

#.

한잠 깨어 창밖을 보면 세찬 비가 쏟아지다가

잠시 한데 눈 끝에 다시 보면

시치미 똑 뗀 채 그쳐 있다가

 

#.

컴컴한 방안을 밝혀

글 한줄을 쓴 뒤에

초록 낙숫물로 붓을 씻었다

 

#.

장마가 언제쯤 그칠거냐고

모두들 궁금하다

코로나는 잠시 잊은듯 하다

 

#.

거친 감탕물과

곳곳의 생채기들

 

#.

비 속에

사람의 길과

논밭의 둑이 망가지더니

강아지마져 눈병이 났다

나 보다 더

장마 끝나기를 학수고대 했었나 보다

 

#.

밤새 500밀리가 넘도록 올 것이라는 호들갑은

꿈 속의 염불이 되고 말았다

 

#.

다행 중에도

여전히 500밀리를 넘게 채울듯한 빗줄기

 

#.

이제

우리 모두

기우제 라는 사람의 말을 폐기해야 할 때,

 

#.

저기 멀리 추운 나라의

아주 오래 된 빙하가 모두 녹아 버렸다는 풍문

 

#.

죽고 사는 문제는

이제 개인적 건강의 굴레를 벗어나

살아 있는 모두의 절박한 문제가 된 것일까

 

#.

집 안의 제습기가

종일토록 빈한한 살림살이를 쥐어 짜서

양동이 넘칠 만큼씩의 물을 뽑아내는

물 속의 날들,

 

#.

간절한 마음이 되어

자주

하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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