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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이되
장마 같지 않게 지지부진 흐리기만 하던 날들이
부쩍 힘을 내어 장대비를 퍼붓던 날
서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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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장가는 언제 갈거냐는 화살을
온몸으로 견디던 늙다리 아들의
말년? 에 얻은 예겸이가
백일 옹알이를 이어
기다가
걷다가
드디어 생애 처음의 생일을 맞았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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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돌을 축하한다고 글 한 줄 쓰고
제법 장하게 자란 먹을거리들로
초록 가득한 보따리를 꾸려 도회의 아이들 집에 가는 길은
몇 번의 경험에도
여전히 낯설고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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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할이 넘는 외할머니의 노고 덕분에
아이는 콩나물처럼 우쭐 자라
걸음걸이가 비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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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시 주거의 주방 기능은
현저히 퇴화하여
아주 간단한 개수 기능 외에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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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급적이면 밖에서 사 먹고
집안에서 먹을 음식은
주문과 배달로 해결하는
하이브리드 인스턴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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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배달의 민족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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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이 막 깨어나던 새벽
산중 누옥이 있는 마을에는 호우경보가 내려져 있어서
첫새벽 어둠 속을 도둑처럼 빠져나온 우리는
두 시간 넘어 빗길을 운전하여
마을 언저리에 당도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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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볼 수 없던
폭포와
거친 감탕 물과
곳곳이 할퀴어진 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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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전화 안에는
강수량보다 더 많은
국가적 배려의 문자들이 넘실거리고도
어디 어느 곳의 산과 집이 무너져
사람이 상하기도 했다는 흉흉한 소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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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노자께서 썰 하시기를
취우부종일(驟雨不終日)이라 하셨으니
굳게 믿는 마음을 묶어
여전히 거친 빗 속
동그랗게 몸 구부려 한잠 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