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햇꿈둥지 2020. 8. 2. 10:59

 

 

#.

장마이되

장마 같지 않게 지지부진 흐리기만 하던 날들이

부쩍 힘을 내어 장대비를 퍼붓던 날

서울로 간다.

 

#.

도대체 장가는 언제 갈거냐는 화살을

온몸으로 견디던 늙다리 아들의

말년? 에 얻은 예겸이가

백일 옹알이를 이어

기다가

걷다가

드디어 생애 처음의 생일을 맞았다기에

 

#.

첫돌을 축하한다고 글 한 줄 쓰고

제법 장하게 자란 먹을거리들로

초록 가득한 보따리를 꾸려 도회의 아이들 집에 가는 길은

몇 번의 경험에도

여전히 낯설고 불안하다

 

#.

팔할이 넘는 외할머니의 노고 덕분에

아이는 콩나물처럼 우쭐 자라

걸음걸이가 비호 같다.

 

#.

현대 도시 주거의 주방 기능은

현저히 퇴화하여

아주 간단한 개수 기능 외에는 없는 것 같다

 

#.

가급적이면 밖에서 사 먹고

집안에서 먹을 음식은

주문과 배달로 해결하는  

하이브리드 인스턴트 시대,

 

#.

과연

배달의 민족이로다.

 

#.

그 밤이 막 깨어나던 새벽

산중 누옥이 있는 마을에는 호우경보가 내려져 있어서

첫새벽 어둠 속을 도둑처럼 빠져나온 우리는

두 시간 넘어 빗길을 운전하여

마을 언저리에 당도해 보니

 

#.

평소에 볼 수 없던

폭포와

거친 감탕 물과

곳곳이 할퀴어진 길들,

 

#.

손 전화 안에는

강수량보다 더 많은

국가적 배려의 문자들이 넘실거리고도

어디 어느 곳의 산과 집이 무너져

사람이 상하기도 했다는 흉흉한 소문들,

 

#.

일찌기

노자께서 썰 하시기를

취우부종일(驟雨不終日)이라 하셨으니

굳게 믿는 마음을 묶어

여전히 거친 빗 속

동그랗게 몸 구부려 한잠 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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