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그 사람[2]

햇꿈둥지 2005. 5. 12. 14:41
3년여의 홀아비 생활 끝에
밥 짓기
빨래 하기에 제법 이력이 붙은 사람

마을에 유일한 동갑나기라서 시골살이 10여년만에 제일 만만해 하는 사이임에도
제 살이, 내 살이가 제 각각이고 보니 어쩌다 만나봐야 서먹함이 앞서기 일쑤인데
한달여 전인가?
평일 저녘 늦은 시간임에도 불쑥 전화를 넣었다
'막걸리 한잔 하겠느냐?'는 물음인데 앞서는 느낌이 대작을 원함 보다는 뭔가 숨겨진 긴요함이 있어 보인다
어둔 밤 안주 변변찮은 술상에 마주 앉아 그간의 밀렸던 얘기라고 나누어 봐야
손바닥 만한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니 어제 일들이 오늘 일이요,오늘 일들이 또 내일 일들이라...

그 중에 경칩 지난 개구리 첫소리하듯 힘겹게 내 놓는 속내인 즉슨,
어찌 어찌 아는 이의 소개로 홀로살이 중인 여인네 하나를 소개 받아 그럭 저럭 서로를 익혀 가는 중인데 여인네 앞에 딸린 스물 갓넘어의 딸아이를 어디 취직을 시켜야 둘의 일이 진행 될 듯....싶다...는 숙제 아닌 숙제 하나를 은근히 건네주려 했음이다

그래
이 나이쯤 서로 예견 할 수 없어 경험한 허방걸음 이거니
남은 세월 정 나누어 한걸음 될 수 있으면 무언들 못 나누리...

기왕의 일,
좀 더 소상한 얘기도 나눌겸 하루 시간내어 저녘이라도 같이 나누자...했다

그렇게 만나진 자리
생각보다 서먹함이 커서 말한마디 한마디가 그저 혓바닥 깨문 아이 엄마 부르듯이 더듬 더듬인데
거 참!
나이들어 만남이란 이리도 현실적이어야 하는지

'한 마을 적지않이 만나 왔으니 그 사람 살림 형편이 어떠냐'고 아주 은밀한 말빛으로 물어 오길래 암 생각 없이
"아! 그 사람 이 마을에서 제일 알부자요"이래 버렸다

그렇게 두어 주일 후에
집안에 들이 닥친 손님 치레로 정신 없는데 불쑥 이 예비 부부께서 찾아 오셨다
대뜸 정색 뒤에 그리 날서지 않은 힐난조로

'뭐 알고 보니 알부자는 정말 아니더라...'는 말씀인데

내 대답

"아니? 그 사람 그럼 요즘 양계일을 그만 뒀나요?"

껄 껄 껄~

그렇커니 요즘 건네어 들리는 얘기들이 아주 구순한듯 하니
두 사람 손 잡고 새로이 걷는 걸음걸이
그저 따듯한 눈길로 바라만 보아도 흐믓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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