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겨울 건너기

햇꿈둥지 2005. 12. 14. 17:40

마을은 잔뜩 옹크린채 잠 들어 있다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는 늦은 아침의 시간에 마을을 내려다 보면

게딱지 같은 누옥들이 양짓녘에 옹기종기 햇빛 바라기를 하는 모양으로 보인다

한번의 눈이 내리고

마을은 겨울 깊이로 가라 앉고 있다

이 겨우내 내리는 눈들이 꼭 시루떡의 켜 처럼 쌓이는 동안 마을 사람 모두는 한켜의 옷을 더 껴 입게 될테고 그 갈색의 날들을 견뎌 낼 것이다

 

정지...

아니다

휴지가 적당 하겠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이 보이는 이 마을에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침, 혹은 저녘의 때를 맞추어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젓빛 연기이다

얼어 붙은 마을 고샅 어디에서도 사람의 그림자를 볼 수는 없으나

낮은 지붕 안에 나 여전히 건재해 있노라는 안부의 봉화 같은 연기들이 피어 오르곤 한다

 

눈이라도 올라치면

마을 골목 길로 아주 낮게 깔려 들리는 닭소리 이거나 개짖음 소리...

이 겨울에 이렇게 살아 있음은 눈물겨운 일이기도 하다

 

겨울을 나는 동안

세분의 노인께서 돌아 가시고

남은 모두는 그들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한해의 주름을 더 깊게 했으며 허리는 더욱 굽은듯이 느껴진다

 

툭하면 집을 나가고

그럴수록 가족들은 더욱 집요하게 찾아서 손잡아 들이던 아랫집 며느리...

시집와서 단 한번도 가리파재를 넘은 일 없이

매일의 그 하늘

매일의 그 터전을 숙명처럼 헤집어 살던 종국 할머니의 한 생애는 박제당한 구닥다리 세월 이었지...

춘천에서 대구를

해산물 펄펄 뛰는 동해안을 눈 한번 꿈쩍하면 당도 할 수 있는 세월에 잠시의 집 비움이 무어 그리 대수랴...

허기야

긴한 볼일로 몸 옮겨지기 전에 제 본분을 잊고 허공을 떠도는 마음이 문제겠지...

그 흔들리는 의식을 잡아 두겠노라고 잔주름 쪼글쪼글한 나이에 면사포를 씌워 주겠단다

마을 모두가 모여 술잔을 나누고 덕담을 건네고...

 

사람의 살이...

 

내 살아가는 방식이 건강하고

그 건강함이 남 살이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손 잡아 간절한 마음으로 건네 주었다

 

겨울은 이제 십이월의 열사흘을 건너는데

마을 모두가 참담하게 옹크려서 흘려 보내는 시간이 아닌

따듯한 가슴을 모아

따듯한 봄 맞이로

눈빛 가득 현기증 나게 일어서는 아지랑이처럼 일어설 수 있도록

가슴 깊은 곳에 불씨 하나 잘 간직 했으면...

'소토골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라질노무 보일러~  (0) 2005.12.26
대동계  (0) 2005.12.16
DIY  (0) 2005.12.12
즐거운 노동  (0) 2005.12.01
맨 땅에 헤딩~  (0) 2005.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