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가을 가을 가을...

햇꿈둥지 2006. 9. 11. 16:54

 

 

 

달빛 모두 시린 이슬로 내리는밤,

귀뚜라미 소리

베짱이 소리

풀무치 소리

 

해 넘어 가기 바쁘게 칠흑의 어둠이 밀려 오고

어둠의 두께만큼 추위가 느껴져서 인지 풀벌레 소리 한층 요란 합니다

 

그늘로

그늘로

더위를 피해 다니던 것이 엊그제인데

초록은 시름겹고

산 그늘은 한없이 처연 합니다

 

추녀 끝 폐가의 거미줄에 박제된 여름으로 남겨진 매미 한마리,

매미의 허물 벗음을 蟬 이라 하고

사람의 깨우침을 禪 이라 한다는데 이 역시 미혹의 꺼풀을 벗어 던지는 일이니 허물 벗음 으로의 표현에도 무리 없을듯 싶으나

일상의 미로...

그 안 깊이에 감추어진 단물 한모금에 홀려

단 한번도 우화하지 못한 곤충처럼 내 안의 어둠을 떨쳐내지 못 합니다

 

젊은날

월남 참전의 시간들을 평생의 무용담으로 살아 가는 손윗 동서가 환갑을 맞았습니다

가족끼리의 조촐한 점심 자리,

예의

길고 지루한 무용담 속에서 무수히 얻어 터지고 죽어 자빠지는 베트콩들에 대해 공적의 개념을 새롭게 하고 숱한 전적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냄 으로써 한껏 의기양양해진 동서는 보람 찬 환갑의 시간을 보냈으나

아~!

어찌하여 동서의 젊은 날에는 월남전 밖에 없었는고?...

임진왜란도 있었고

살수대첩도 있었고

워털루 전쟁도 있었고

장미 전쟁도 있었고

대동아 전쟁도 있었다면

이렇게 달 달 외워진 한가지 무용담에 진이 빠지는 일은 없을텐데...

 

침 튀기는 동서의 무용담이 길어지는 만큼

술잔이 거듭되고

죽어 자빠지는 베트콩의 숫자만큼

술병이 죽어 자빠지고...

 

그의 얼굴에서 문득 가을을 봅니다

 

비와 바람과 햇빛을 거두어 채곡 채곡 알곡을 거둔 자연처럼

장대 같이 우쭐 자란 아이들...

 

사람의 일생도 이렇게 비워지는 것이 아닌

채워지는 것 임을...

 

그러나

가슴 복판에서 난장의 회오리 처럼 불기 시작 할

이 계절의 허튼 바람은 어이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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