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내리고 난 뒤
추녀 끝에 휘감겨 드는 헝클어진 바람을 타고
밤새 풍경은 제 가슴을 쥐어 뜯어서
잠결인지 꿈결인지...
가리마 고운 어머니 모습 이거나
바람에 누웠다가 우수수 일어서던 보리밭 둑 이였거나
붓끝처럼 하늘 복판으로 향해 있는 미류나무 이거나
한여름 밤 모깃불 속에서 보던 별똥 별 이거나...
이 따위 연결되지 않는 어수선한 꿈들이 뒤죽박죽 이어지고 있었다
이 마을 영인이네 논이 여름내 키워 온 영근 벼들을 모조리 압수 당한 뒤
썰렁하게 속살을 내 놓고 누워 있는 풍경
무얼 지키라고
거두어지지 않은 허수아비는 아직도 어금니를 앙다문채 헤진 옷자락을 흔들고 더러는 산그늘을 잘게 부수어 겨울 바람만 일구고 있었다
문득
바람벽 숭 숭 뚫려 있던 구멍들이 더 크게 더 크게 보이기 시작했고
갈기를 세운 바람들은 기어이 좁은 문틈을 비집어 일거에 집안으로 몰려 들고 있었다
이때 쯤이면 집안은 더욱 넓어 보이고 아내와 구성하는 둘이라는 숫자는 한없이 빈약 하기만 하다는 걸 새롭게 깨우치는 시기 이기도 하다
그 깨우침이 더러는 외로움이 될 무렵
하늘은 털썩 눈을 쏟아내거나
푸른 하늘에 뿌리를 둔 고드름을 주렁 주렁 키우기도 했었다
초록 흐드러지던 나뭇잎들이 시들기는 했을지언정
아직 가지와의 인연을 거둔 것은 아니니 그래도 가을 이라고
적당한 게으름을 끌어 안고 살아도 좋은 날들
바위틈 담쟁이 덩쿨이 푸른 손을 뻗어 오르고 오르다
붉은 태양빛에 지쳐 각혈하듯 피빛으로 물들어 버린
시월의 스무사흩날...
낙엽의 두께만큼
그리움도 쌓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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