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饑來喫飯 困來卽眠

햇꿈둥지 2006. 5. 10. 17:01

 

 

기래끽반 곤래즉면(饑來喫飯 困來卽眠)

 

시골살이 이 보다 더 적절한 말이 없겠다

배 고프면 밥 먹고

힘들면 잔다는 뜻이니

그야말로 꼴리는 대로 산다는 말이겠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더러는 퇴근 이 후의 적지 않은 시간들이

내 스스로 통제 할 수 없는 궤도 위에서 함부로 이 몸을 끌고 다니고

머릿속을 휘저어 놓으니

이런 저런 일로 복잡해지면 과하다 싶게 술을 마셔 버리고 깊이 잠 들어 버리는 버릇,

이 못된 잠 버릇에는 늘 세개에서 많게는 다섯개 가량의 벼개를 깔고 괴고 뭉개고 하니

이 또한 기벽이 되겠다

 

과학을 신앙처럼 신봉하는 이 시대 사람들의 얘기로는

로보트가 발전하여 제한적 범위 안에서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이보그까지를 진화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결론으로 인간은 훨씬 많은 여가 시간을 갖게 될 것이고

기계를 지능적으로 사용하는

인간 편의적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라는 기대...

 

웃긴다...

 

늘 그렇듯이

오늘 아침에도 나는 이랬다

 

일어나서

전기와 화석연료에 의해 물을 뎁히는 보일러를 가동한 뒤에야 세수를 할 수 있었고

역시 화석연료를 불태운 열에너지에 의해 밥을 먹었고

그리고

자동차의 시동을 걸어 그노무 기계와 합체를 한 뒤

장 장 52킬로미터를 미친듯이 달려 사무실에 당도 했으며

사무실에 당도 해서는 컴퓨터라는 놈에게 전기를 주어 정해진 기계적 약속을 이행한 뒤에야 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인 나는

이미 사이보그인 셈이다

 

로보트를 발전 시켜 사이보그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사이보그 이니까...

제한적으로 사고하며 제한적으로 행동하는...

 

사무실 컴퓨터를 끄고

차의 엔진을 끄고

내 발로 어둠 내리는 치악 뜨락을 올라서서

주변 울울창창항 초록들과 손잡아

하루의 안부를 나눌 때

나는

산속의 모든 초록 생명들에 기대어 사람 본연의 자세를 회복 할 수 있는 

주야불일치의 이질적 생명체인 것이다

 

배고프면 먹고

힘들면 잠 들어 버리는

식물성 의식 하나 가슴속 뿌리로 간직한 채

창고를 채우는 일로 분주하지 않은

한마리 짐승이고 싶다

'소토골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 오십니다  (0) 2006.05.22
息影의 季節  (0) 2006.05.15
뻐꾸기 울다  (0) 2006.05.09
가는 봄을 쫓아 가다  (0) 2006.05.08
삽 한자루의 의미  (0) 200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