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혼재 계절,

햇꿈둥지 2021. 11. 20. 08:58

 

 

#.

안개였다.

사람의 마을은 깊이 가라앉아 고요하고

등짝 큰 산들은 허공에 둥실 솟아 명랑하고,

 

#.

몰락한 왕조의 지폐처럼

폐기되어 버린 낙엽들만 무수한 뜨락에서

세월은 또 하염없다.

 

#.

가을의 꼬리와

겨울의 머리가 뒤섞여 헝클어진

혼재 계절,

 

#.

몇몇의 사람에 의한

몇 번의 전화를 받았다.

아주 오래 전의 인연들,

 

#.

아직 내가

누군가의 기억속에 남아 있다는 것,

 

#.

오늘 또

누군가를 그리워해야 하는 이유이다.

 

#.

귀엽게 생긴 아이들이 왔다고

짜장면 집 아줌마가 참깨를 넉넉히 뿌려 주었는데

통참깨가 낯선 정우의 "이게 뭐지?"에 대하여

"몸에 좋은거야"라고 한방에 제압해 버린

다섯 살 정환이,

 

#.

아이들을 돌 보는 일

참 만만치 않다.

 

#.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주변 정리 일들

봄부터 여름 지나 가을 건너기까지

끝없는 게으름을 늘어놓았던 거다.

 

#.

산속 하루는

길이를 잴 것조차 없이 짧아서

일어나서

몇 걸음 동동거리다가

길게 누운 산 그림자에 걸터앉아

아궁이 가득 불 들이고 나면 

이내 어둠,

 

#.

며칠 뒤에 다시 비 오시고

기온이 급 강하할 거라는 입방정,

 

#.

구운 고구마 몇 개를

여의주처럼 끌어안고

아랫목 이불 섶을 들추어 누우면

하룻밤 꿈길이 따듯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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