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고 어설픈 농사 일
그래서 대부분의 일들이 마을에서는 늘 꼴찌 이지만
엉뚱한 일을 하는데는 늘 일등 입니다
늦은 감자 심기를 마치고
쉬는 짬에 솟대 하나 만들었습니다
남 보기에는 폐품 정도로 보이겠으나 제가 보기에는 작품 입니다
엉성한 목조의 새 세마리를 매달으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서울이나 경기도의 새들이
[봄이 왔어요~] 하고 지저귀는 것 이라면
강원도의 새들은
[봄이 왔대유~] 하고 사투리로 지저귀지는 않을까?
그럴꺼야...사람의 일이 그러한 것 처럼...
사람 많은 도회의 거리에는 이미 지고 있는 꽃들이
이 곳 소토골에서는 이제 피어나기 시작 합니다
3년전 옮겨 심은 할미꽃들 봄 햇살 속에 기운차게 피어 납니다
샘물가에 심었던 앵두나무도 이젠 제 모습을 만들어 가며 꽃 피우기 바쁩니다
마침 이장네 밭에 호밀이 잔뜩 심겨 있으니
5월 어느 날엔
호밀 대롱 끝에 빨간 앵두를 얹어 입바람으로 띄워 올리는 아이쩍 놀이를 즐길 수 있겠습니다
아직 어린 모습이긴 해도
목련 몇송이 피어 납니다
갈색의 척박한 땅 어디에 저런 모습이 숨어 있었는지...
황사로 얼룩이 지거나
심술 바람으로 옷깃을 세우게도 했던 4월의 여린 날들이
어느새 이렇게 산사나무 고운 순들을 연록의 예쁜 모습으로 키워가고 있습니다
감자 눈을 자른지는 근 이주가 넘었으니
싹이 나는 중에도 더러는 무르고 썩기 시작 했습니다
이런 상태의 씨감자를 끌어 안아 싹 틔우고 건강한 감자가 달리도록 키워내는
대지는
저 고운 흙은
진정한 우주의 자궁 입니다
감자 심기를 마친 후 아내와 함께 뒷산엘 올랐습니다
화살촉 홑잎이 듬성하게 섞인 홑잎들 딱~이다 싶을 크기로 자라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될 수 있으면
주변에서 구 해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자...고 결심한 터라
주머니 가득 고운 순들을 뜯습니다
홑잎과
부추와
망초 입니다
사람의 농법에 의해 재배된 먹을 거리에만 고착 되어진 생각을 바꾼다면
이 봄
초록의 먹을거리는 지천 입니다
지난 해 농사 지은
태양빛 고추가루와
들기름과
직접 빚어 익힌 고추장으로 어울어진 저녘 밥상은 임금의 수랏상이 부럽지 않습니다
감자며
이런 저런 채소의 씨앗을 뿌린 뒤에 내린 봄 비...
사월 열여덟번째의 밤이 혼곤히 깊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