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마당쇠의 진수

햇꿈둥지 2006. 4. 16. 09:36

 

 

기계만 있으면 뭐든지 척 척 되는 줄 알았다

마을에 사는 이장처럼 순식간에 밭갈고 이랑 짓고...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저노무 관리기 몸체에 구굴기라는 것을 일일히 조립, 연결하는 과정에서 부터 무진 무진 애를 썼고 땀을 흘려야 했다

사용설명서의 그림을 보다가 결국은 마지뜰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종구씨를 찾아가 현장 학습을 마친 뒤에도 조립은 쉽지 않았다

결국 거름 펴는 일을 마친 종구씨의 방문 지도로 조립을 마쳤는데

아침 일곱시부터 주무르기 시작한 일은 열시반경에나 끝이 났고

드디어 농사철 마당쇠의 진수를 보이기 위해 600평 너른 밭에 이랑 짓는 일을 시작 할 수 있었다

 

 

삐뚤 빼뚤 쪼끔 강원도스럽긴 해도

어쨌든 내 손에 의해 움직인 기계가 의도대로 일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진작되고 고무되고 의기양양 해 지기 시작 했는데

아~! 우라질노무 마데인조선...

로터리 바른쪽 뭉치가 통째로 빠져 버리는 일차 사고가 발생했다

결합 부분에 들어 찬 흙을 파 내고 윤활유 쳐서 다시 결합...땀 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관리기란 놈은 돌 많은 이곳 강원도에는 마땅치 않은 장비인게 분명하다

뒷걸음 진행이야 그렇다 치고

수시로 출몰하는 돌덩이에 로터리 날이 부딪히면

로터리 날에서 불꽃이 튀고 작은 몸체는 덜커덩~ 기우뚱...난리를 치니

차라리 과천 대공원 아기코끼리 업어 잠 재우기든지 아니면 호랑이 이빨 닦아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게 낫지

온 몸 특히 어깨와 팔목 장딴지 허리...있는대로 힘을 주어야 하니 아주 결딴이 난다

환장하게도 이랑이 끝날 부분쯤에는 대추나무 몇 그루가 있는데 이 지점에서 정확하게 기계를 멈추어 방향 전환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마수거리에 이게 어디 척 척 되겠는가?

관리기는 밀어 부치지...등 뒤의 대추나무 가시는 등짝을 파고 들지...

농사?

아무래도 서울가서 사기를 쳐 먹고 사는게 낫지 싶다...

 

 

중간 급유도 하고 수시로 정비도 하고

어쨌든 폼은 나무랄데 없는 영농 기사다

 

 

일의 강도와 품격(?)에도 불구하고 새참의 메뉴가 날이 갈수록 무성의 해 지고 있다

맥주 한캔에 잣 한그릇을 싸 준게 전부,

거기다가 집안에 계신 마누라의 호출에 상시 대비 하라고 전화기 까지 놓고 가 버렸다

 

 

삼분의 일쯤의 일이 진행 됐으니 어림으로도 약 200평쯤의 일이 진행 되었나 보다

늙은 나이에 초산하는 여인네 처럼 온 몸에 힘을 주고 용을 쓴 것도 그러려니와

숱한 뒷걸음질 왕복 탓에 허벅지는 물론 장딴지, 발목까지 통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잠시 쉬는 시간을 만들어 두다리 번쩍~ 하늘 바라기를 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다섯시간여의 악천고투 끝에 저 너른 밭에 사래 짓기를 마쳤다

혼자 생각 해 봐도 대견하기 그지 없다

서울에 있는 아들넘과 딸넘과 처제와 조카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화자찬을 늘어 놓다가

전화세 많이 나온다는 마누라 핀잔만 들었다

 

oh~! gloomy farmhand~

 

그런데

일 마치고 씻은 뒤 부터 양 손바닥이 동시에 가렵기 시작했고

그 손바닥을 번갈아 긁어대며 나는 낄 낄 낄~ 웃어 댔었는데

저녘 무렵에 들이닥친 안양의 스테파노 마리나 부부와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얼씨구~

손바닥 손등이 소복하게 부었음은 물론,

손에 어떤 것이 닿든 불쾌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계의 이름이 관리기이긴 하나

사람 몸뚱이의 관리에 훨씬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일 마친 해거름에 마당가 샘물에 흙 묻은 얼굴이며 손,발을 씼다 보니

4월의 햇빛을 모아 흰색 이거나 보랏빛으로 피어 난 꽃잔디며 제비꽃...

 

힘겨운 중에도 크게 위로가 되는 자연

손 닿는 곳마다 이런 것들이 함께 있음에 시골 생활은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생각,

 

얼마나 아름다운가???

 

 

[쌍동이 아빠를 위한 특별한 사진]

 

구들방을 점거한 쌍동이 천사 입니다

 

 

 

 

아직 이름을 짓지 못해 저 혼자는 그저

큰녀석은 상희 작은 녀석은 동희...

 

큰녀석 이름을 쪼끔 된 발음으로 하면 쌍동희...

 

마당가며 온 들에 지천으로 꽃이 피는 절기에

집안에서도 이렇게 예쁜 꽃을 볼 수 있어 행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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