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긴급 마을회의

햇꿈둥지 2006. 3. 29. 13:35

긴급 마을회의가 있으니 꼬옥~ 참석해야 한다고 전화가 왔다

마을 모든 사람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마을 모두의 한가운데는 다소 왜소해 보이는 양복 차림의 사내 하나가 난감한 표정으로 연신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얘기인 즉슨,

마을 한가운데 빈집을 여차 여차 구입해서

주님의 은총과 성령의 기운이 충만하여 이 험한 세상 구원의 옴파로스로 만들어 가고자 하니 주민 여러분께서는 마음 모아 받아 주십사...뭐 이정도로 요약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을 거듭 거듭 반복하고 있었고 풀 뜯어 먹은 너구리 표정을 한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건성 건성 듣고 있었다

 

기도를 하고 수양을 하려면 어디 어디 깊은 산 속으로 들어 가든지 왜 하필이면 마을 한 복판이냐?

이 동네에 그따구 혐오 시설이 들어 오면 되겠느냐?

들어 오면 보나마나 스삐까 크게 틀어 놓구 연일 할렐루야를 찾지 않겠느냐?

구리수마수가 닥아 오면 더 난리 칠게 분명하다

또 여름이면 애덜이 잔뜩 모여 가지구 깸뿌를 한다고 불피우고 난리를 칠 것이 뻔하다

경운기 한대 겨우 지나다니는 마을 길에 뻐스가 들어 오고 난리가 날 것이다

집집마다 물이 딸리는 판에 그 많은 사람들이 들어 오면 가뜩이나 모자라는 물이 동이 날 것이다

우리주 예수 보다는

동동주 약수가 더 좋다

농사 일에 몸이 천근이라 해 떨어지기 바쁘게 자야 할 판인데 마을 한 복판에서 시끄럽게 하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안기옥(안디옥) 교회는 목사님 이름이 안기옥이냐?

성이 안씨니까 안 된다는 얘기도 잘 알아 듣지 않겠느냐

우리는 평생 양복이라고는 없는 농사 밖에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이니 저렇게 양복을 입은 사람들 하고 어떻게 같이 지낼 수가 있겠느냐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우쨌든 안된다

무조건 안된다

 

이 팽팽한 설전의 한 가운데서

나는 건성 건성 소줏잔을 비우며 마을 사람 모두의 표정을 살펴 보는 일에 심취해 있었고

그 일은 또 상당히 재미있는 일임을 느끼고 있었다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머릿속이 정리 되지 않는다

그냥 철부지 아이처럼 이 상황의 진행을 지켜 보기만 하다가...

 

기도를 쪼금 더 길게 해 보시래유~

그러면 하느님께서 틀림 없이 이곳에 기도원을 만드는 건 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대답 하실 것 같대유~

 

해식이의 낄낄대소에 관계없이

장로님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려짐을 얼핏 시선으로 느낀다 

 

마을을 찾는 손님의 자세에서 선물 삼아 들고온 과일이며 음료수 조차

되돌려 보내야 한다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에이~ 뭘 그것까지 되돌려 보내느냐

어차피 목사님께서 들고 오신 것이니 주님의 이름으로 나눠 먹으면 되지...

 

그들의 논리...

시골을 철저히 휴양 공간으로 분류해 놓고 여가의 시간에 소풍처럼 들려 즐기려고만 하는 인식의 오류...

그들의 휴가 중 에도 불구하고

시골은 언제나 업무 중 이었으며

그들의 신앙처럼

이들에게도 농사 그 자체가 신앙보다 치열한 일 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늘

도시의 그들과

시골의 우리는 똑같이 세끼의 식탁을 준비해야 한다

 

공간...

그 쓸데없는 의식의 격리

 

따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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