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수 많은 복병들

햇꿈둥지 2006. 4. 3. 10:27

3월 마지막 날(금요일)

 

아내는 딸녀석과 먼 안양까지 옷을 사러 갔단다

작업복 한벌이면 그만인 시골살이...

일찍 집에 들어 독작으로 쐬주 일병을 때렸다

스테파노가 포크레인을 몰고 다녀 간 뒤로

집 오름 길 아래로 매설 된 마을 공동 수도 파이프가 새기 시작 했다

봄 되며 녹기 시작한 땅 위로 무거운 장비가 지나는 통에 약한 파이프가 터진듯,

미안한 마음에 향자네 집으로 전화해서 사정을 알려는 놓은 터,

내일은 누수되는 부분을 파 헤쳐 보수 작업을 해야겠다 

초저녘 잠결에 들리는 날씨 예보로는 주말 내내 비가 올 것이라고 한다

 

마을회관에는 다른 날 같지 않게 늦은 시간까지 불빛이 환하다

마을 안에서도 몇몇집이 벌써 감자를 심고 있으니 이제 밤마다의 마실도 끝 이려니 싶다

 

비몽사몽 잠에 취해 있는데

도착한 딸녀석은 이옷 저옷 자랑이 분분하다

 

등록금 인상 됐다고 대자보는 왜 붙이는고?...용돈을 아끼면 될 것을...

 

 

4월 첫날(토요일)

 

회색빛 무거운 하늘이 치악 능선에서 허리를 펼 줄 모른다

삽과 곡괭이를 메고 식전부터 중노동을 시작했다

곧 비가 올듯 물기가 느껴지는 날씨에도 곡괭이 끝에서는 불꽃이 튄다

강원도...

발 끝에 채이는 것이든 삽날에 부딪히는 것이든 돌마다 모서리가 날카롭다

한시간여를 끙 끙 거리며 삽으로 보다는 곡괭이로 찍어 낼 부분이 더 많은 고된 일

드디어 파이프가 보이는데...

빌어 먹을... 이노무 파이프란 것이 13밀리의 구닥다리 파이프니 지금 이 촌구석 어디에서 부속을 구 할 수 있을지 난감하다

이 궁리 저 궁리...

하는 수 없이 묻혀 있는 그 상태의 부속을 살려 쓰기로 결심,

천신만고 끝에 해결은 되었으나

가랑비에 옷 젓는다고 물기 배인 등줄기에서 부터 한기가 쏟아진다

 

저녘 무렵엔 주말에만 집에 있는 사정을 꿰 뚫은 순기 형님의 유혹으로 마을 아주머니들과의 술판

감자를 심고

어디 어디로의 품앗이 얘기들이며

질박한 삶의 얘기들이 안주가 되고 주거니 받거니 건네지는 술잔들이 낮 동안의 고된 일과 합쳐져 잠으로 쏟아져 내린다 

 

 

4월 둘쨋날(일요일)

 

여전히 이슬비 내려서 처마끝 낙수로 내리는 비요일

처마끝 낙수를 하염없이 바라 보면서 그저 비로가 아닌

겨우내 얼어 붙어 있던 갈색 대지를 깨우고 힘을 돋우는 수혈로 느낀다

비 긋는 시간을 못 참아

마당 끝에 놓인 외짝 장승의 짝을 채워 주겠노라고 목각판을 벌이기도 하고

스테파노가 놓아 준 덩치 큰 돌 위에 엉성한 돌탑을 쌓기도 하다가

저녘겸 아내가 준비한 누룽지 닭백숙에 곁들인 소주 한잔으로 초저녘 잠이 들었었는데

이게 뭔소리?

잠결에 들리는 전화 통화의 내용인 즉슨,

이 밤에 누군가 방문객이 있는 모양이다

이제 시집을 갈 만큼 다 자란 조카 딸 녀석이 모처럼 집에 온 사이

교제 중이라는 남자 친구가 집엘 찾아 오겠다는 내용

이비인후과 수련의라는 친구가

눈치 코치는 전혀 없는 모양...

 

그렇게

비몽사몽간의 손님맞이 끝에 잠때를 놓쳐 버려 밤새 토막 잠을 자고는

꼭두 새볔에 딸녀석 택배, 출근...장 장 세시간의 중노동을 하고 나니

글을 쓰는지

무얼 하는지

 

햇살 펴지기 전 임에도 두 눈이 가물 가물 하고

아무리 생각 해 봐도 쉬었다기 보다는 수많은 복병에 시달린 긴 이틀 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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