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지하에서 길을 잃다

햇꿈둥지 2021. 5. 10. 07:58

 

 

 

#.

서울 하고도 강남이라 하여

미리 쫄은 촌 부부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

한시간 반쯤의 칙칙폭폭 시간은

새 길로 새 기차가 달림으로써

번쩍하여 우리를 도시로 옮겨 놓았다.

 

#.

큰 도시의 입에 물린 빨대를 위해

모두들 발전의 건배를 들은 뒤의 일,

 

#.

땅 속의 너무 많은 길들에 홀려

우리는 갔던 길을 맴돌거나

멈춰 서서 지도를 보거나,

 

#.

오래 기다렸던 지금이 

순간적 과거가 되어 버리는

너무 빠른 도시,

 

#.

아주 많은 사람들이

얼굴의 반을 가린 채

스마트 경전에 엎드려 경배하고 있었다.

 

#.

이제 

이동 방식에 이어

도시 전체가 데린쿠유처럼 땅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 같다.

 

#.

더는 물러 설 곳이 없는

꽃 같은 아이들이

당초 계획했던 결혼식보다 다소 낡은 얼굴이 되어

허둥지둥 부부되는 행사를 마쳤다.

 

#.

바람의 언어와

새들의 독백과

지하의 아우성과 

지상의 한숨들이 아주 낯 선

이상한 도시,

 

#.

탈출처럼

다시 도시를 벗어나

모난돌이 지천인 산골 밭에

여린 모종을 심던 시간,

 

#.

이제 그만 쉬자고

후드득

빗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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