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이웃(1)

햇꿈둥지 2006. 6. 5. 13:25

 

집 짓자고

아내와 굵은 팔뚝을 걷어 부치고

뚝딱 뚝딱~ 망치질 하고

슬근 슬근~ 톱질하며

스스로 설계하고

스스로 자재 사 들이고

그야말로 우리들 꼴리는대로 피우던 난리법석이 그렁저렁 마무리 될 무렵에

초로의 부부께서 손님으로 오셨다

 

아내의 궁민핵교 은사님 이시라고 했다

 

나는

숙제 검사를 앞둔 까까머리 촌아이 처럼 쫄았고

좋구만~ 을 연발 하시던 선생님께서는 난데없는 숙제 하나를 내주고 가셨다

 

"내가 말이야 은퇴하면 이쪽으로 내려 오려고 하는데

 주변에 어디 마땅한 곳이 있으면 눈여겨 봐주지 그래"

 

이 바람에 덥썩 구해진 땅이 황둔 입구 산자락 천여평의 땅 이었다

아직은 은퇴 전 이시니

주말마다 다녀 가시는 길에 아주 잠깐씩의 손님이 되시는 정도인데

 

그 터전에

콘테이너가 놓이고

콘테이너에 지붕이 씌워지고

콘테이너 앞 뜰에 텃밭이 만들어지고

텃밭 가장자리에 지하수를 파서 수도가 연결되고

야외 탁자가 놓이고...

 

어제는 전화가 왔다

 

마을 몇집이 돼지를 한마리 잡았는데

자네 몫을 떼어 놓았으니 와서 가지고 가시게나...

 

열무 솎아 급히 담근 김치 한통을 들고 찾아 뵙고는

시골 얘기

마을 얘기

농사 얘기...

 

이런 얘기 저런 얘기에 섞어

혜원이와 내가 진단컨데는

중증인 아내의 잘난척에 대한 추임새인지

선생님께서 이때까지 가르치신 제자들 중에 가장 똑똑하다...는 말씀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이따우 오래 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짱구 산에 우뚝 솟은 짱구 핵교는

 00이 짱구니까 학생도 짱구~~~(중략)"

 

그나 저나 늙어 빠진 두 입에 저 많은 걸 언제 다 먹어 치운댜...

 

 

 

 

10월 부터 건조한 갈색 바람이 몰아치고

봄 되기 바쁘게 잡초 우거지는 건 물론이요

발부리 터지도록 모서리 날카로운 돌들이 널려 빠진 이 땅에

똥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음택과 양택 풍수고 나발이고

밀어 부치고 깎아 내려 헤집어 벌린 산들이 속살 훤히 드러내는 수모를 겪더니

어느 날 부턴가는

새로 만들어진 초입의 뺀도롬한 길 위에

"00전원주택지 평당 00원"

무당네집 안방처럼 요란한 깃발이 유월의 설 익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언젠가

도시 생활에 진이 빠진

누군가가 저 터전의 주인이 될 것이고

집을 지을 것이고

주변 산수를 둘러 보는 시간보다

낯선 이웃의 날선 시선 속을 배회 하다가

나 처럼 적당히 지쳐 빠진 일원이 될테지...

 

시선의 각도

 

내 눈 높이에

마누라 있고

늦은 밤 뜨락에 마주 앉아 쐬주 한잔 빠느라고 고개를 젖히니

통 통 여물어 가는 오월 아흐렛 밤의 여문 반달 있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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