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노 정원의 작약
마을에는 이장이 있다
이게 이 산골살이에서 유일하게 "장"자가 붙는 일종의 직함인게다
저 산 아래 저잣거리에는 얼마나 현란하고 요란하고 삐까번쩍한 직함들이 널려 있는가
누구나가
가급적이면 지배계급의 정점에 도달하고 가장 힘 있어 보이는 직함 하나를 내 이름 뒤에 매달기 위해 권모술수와
타협과 배신이 교과서가 되어 버린 세상
그 우울한 세상의 버려진 페이지 처럼 빛 바랜 이 마을에서
나는 그저 이씨...로 불리운다
이 호칭 속에서 느껴지는 진한 사람 냄새...그게 참 좋다
기억 하시는지...
게딱지 같이 납작 엎드린 시골집
메뚜기 이마빡만한 대청 벽에 파리똥 덕지로 붙은 사진 액자 하나 걸리고
흑백의 사진들 퍼즐처럼 빼곡히 들어 차 있는 틀 속에
이제는 죽어 없는 이도
다 자라 장가를 들어 애들이 다 컸음에도 여전히 아랫도리를 내 놓은채 가을 햇살 같이 맑은 웃음을 머금고 있는
아이들,
쇠딱지 붙은 까까머리로 수줍게 찡그린 얼굴도 있고...
그 오랜 사진 속에서 아주 오래 전의 내 얼굴을 확인하는 오늘...
아아~!
우리는 하나 였구나
이씨~
특별하지 않은 이 호칭 속에서
빛바랜 사진 속의 하나로 서 있듯이
갈색 마을, 빛 바랜 표정으로 모든 이들의 이웃이 되어 있는 겁니다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사람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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