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엉터리 농사

햇꿈둥지 2005. 7. 31. 16:11
 

 
 
지난해 과하다 싶은 거름으로 제법 땅심이 돋구어진 탓인지 이 자리에 심겨졌던 배추들은 농약의 힘을 구 하지 않고도 포동하게 자라고 익어서 우리를 행복하게 했었습니다
거두어진 전부를 도시의 가족들에 나누고 나니 또 빈 터전,
씨 뿌려 가꾼듯 망촛대 울울창창하고 쇠비름만 그늘지게 자라길래 쉬는 하루를 쏟아 부어 몽땅 뽑아 냅니다
게으른 선비 책장만 세어 본다고
앞의 긴 사래를 두고도 자꾸 풀 뽑은 뒷 사래에만 눈길이 가니
일은 잔걸음에 땀만 비오듯 합니다
 
 

 
 
이른 신새볔에 원주 둔치의 새볔장을 찾아 파 두관쯤을 샀습니다
대형마켙의 뺀도롬히 다듬어진 파가 아닌 큰 밭에서 이식용으로 팔리는 대파 입니다
물론,
거름 뿌리고 땅 파 제키는 일이야 농사철 마당쇠 격인 제 담당 입니다만
저렇게 파를 심는 일은 아내가 자청하고 나섭니다
일의 고되기야 어찌됐든 이 일의 가장 기술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무언의 자기 주장이 담겨 있는 셈이고
결국 저는 데모도 급 마당쇠로  전락하고 마는 셈 입니다
제대로 심기야 
이식하는 파 잎의 윗 1/3부분은 잘라 버리고 심어야 하거늘 
베어 낸 부분을 다 먹을 수도,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으니 그냥 심어도 무방 하다는 아내의 주장이 주효한 탓 이기도 합니다 
 
 

 
 

 

 

파 옮겨 심기가 끝나기 바쁘게 이젠 가을철 먹거리가 될 당근 심기 입니다

앞장 선 아내가 쪼물 쪼물 씨앗 넣을 자리를 마련해 주면 저는 그 뒤를 쫓아가며 세개 혹은 네개씩의 당근 씨앗을 땅에 넣고 살짝~ 덮어 주면 되는 일 입니다

이것 역시

흙에 넣어진 씨앗들이 모두 발아를 하고 난 뒤면 그 중 가장 튼실한 녀석 하나만 두고 솎아내야 하는 일이니 씨앗을 많이 놓으면 그만큼 뒷 일이 많아지게 되지요

그렇다고 달랑 씨앗 하나만 놓을 수는 없으니 손끝에 닿는대로 그저 넉넉하다 싶게

네개도 다섯개도 넣지요

 

새도 하나

벌레도 하나

마누라도 하나

나도 하나...

 

 


 

 


 

 

풀밭속에 유기되어 있던 토마토들이

바라 보기도 따기도 미안 할 지경으로 버려 두었음에도

비 잦은 칠월의 태양빛을 훔쳐

이렇게 붉디 붉게 익었습니다

 

 


 

 

원래의 태생은 황도 복숭아이나

주인 잘 못 만나 전지가 되나 시비가 되나...

이 지경에 가지마다 흥부네 집 아이 생기듯 주렁주렁 복숭아가 매달리다 보니

태생의 황도는 간데없고 몽땅의 몰골이 간데없이 개복숭아 꼴이라...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러나

단 한번도 내 손으로 네 본질을 조장하지 않았으니 우리 이만하면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윗 밭 3.000여평을 풀밭으로 버려 두고

집안 가까우니 우리 여길 텃밭으로 만드세...

메뚜기 이맛빡만한 터를 만들어서는

상추 뿌리고 당파 놓고...

 

남은 날들

속 태울 것 없이 소꼽장난 하듯 살지

마늘 쪽 같은 뺨 부비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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