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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골 정착기[7]

햇꿈둥지 2005. 5. 12. 17:11
장마라는 단어는
국지성 호우 또는 집중 호우 정도의 표현으로 대체된지 오래인듯 하다

그 여름은 몇일 동안 무겁디 무거운 구름들이 치악의 척추를 동,서로 넘나 들며
지리한 비를 뿌리고 있었다
송림 우거진 앞산에 뿌려지는 비야 적지 않은 낭만적 풍광으로 보인다 쳐도
반자 위로
때로는 주방과 거실을 관통해서 쥐들이 들뛰는 움막 안은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다

그런데 밤부터 퍼 붓는 비의 양이 심상치 않다
이곳에 짐 들이고 몸 뉘여 살아 온 중에 처음으로 위기감 같은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집 윗 쪽의 무엇이 잘못된듯,
초저녘 부터 집 옆 고랑을 벗어난 빗물이 움막 앞의 마당을 채우고 있었다
랜턴 불을 밝힌채 온 몸을 적셔가며
어찌 어찌 알량한 배수로를 만들긴 했지만 퍼 부어지는 비의 량을 감당하긴...비관적이다

열두시가 다 된 시간,
사위는 칠흑의 어둠 뿐인데 무섭게 퍼붓는 뇌우
그리고 마당 가득 밀어 넘치는 황톳빛 빗물,

안 되겠다

겁에 질린 아내와 딸아이를 짚차에 태우고 황급히 집을 빠져 나왔다

그렇게 대피처라고 차를 세운 곳이
중앙 고속 도로의 오버 브릿지 아래
이제 집은 떠 내려 갔을 것이고...

아내와 아이의 쪼그린 모습을 보니 온통 미안하고 딱한 마음뿐 잠은 무슨 잠,

빗발이 조금 약해지는건지, 아님 날 밝음의 여명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의심 반,기대 반으로 움막 마당을 들어서니 다행히 움막은 그대로인데
급작스런 빗물에 쓸린 토사가 물고랑을 막으니 그만 물길이 움막쪽으로 돌아 친 것이었다

먼 윗밭까지 주변을 둘러 보니
옥수수고 뭐이고 몽땅 눕고 쓸리고 난리인데 고추밭의 고추대는 넘어진 놈 하나 없이 멀쩡하다
제초제도, 농약도 치지 말자
결심은 좋았으나 잡초가 협조를 해 줘야지...
고추보다 키 큰 잡초가 밭고랑은 물론 사방을 에워 싸고 있으니 고추가 어떻게 넘어져?...

어쨌거나
이 미련한(?) 농법의 결과로
땅 속에선 지렁이가 살아나고
그 다음엔 참개구리가 돌아 다니고...여기까진 더 바랄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데
먹이 사슬 형성의 당연한 결과로



뱀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예전에 일진 사나운 날 어쩌다 만나지는 조우 정도로가 아니라
법도 엄한 집안의
새색시 아침 문안 인사 올리듯 꼬박 꼬박 만나지는 것 외에,

어느 날인가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아내였다
여보세요~ 까지의 목소리는 누리끼리하게 느껴지더니
남편임을 확인한 후 부터는 완전히 대성통곡이다

엄청난 사건이 터졌나 보다

알아 들을 수도 없이 울음 반 탄식 반을 섞은 내용인즉,

움막 안 테이블 위에 뱀이 들어 와 있다는 것이다
큰일은 났는데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경기도 이천쯤...어찌해야 하나...

놀란 걸음으로 집에 도착해 보니
결국 긴급 호출된 새마을 지도자에 의해 현장 체포(?) 하므로써 상황은 정리 되어 있었다

다행히 평온을 회복한 아내 말,
새마을 지도자 친구에게 고맙다고 전화라도 해주라...는...

해야지...

"따르릉~"
"응 나 혜원 아빤데 뱀 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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