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봄볕 거둠

햇꿈둥지 2010. 5. 6. 07:20

 

 

 

 

 

 

 

#.

"아직 이르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을에선 가장 먼저 고추를 심었다

 

주말 휴일마다의 빼곡한 나들이 계획으로 마땅한 날이 없으니

이 서두름은 부지런함이 아닌 또 다른 게으름이다

 

긴 고랑에 잡초 억제용 비닐까지를 덮고 난 시간이 점심 무렵,

 

문득 밭고랑의 길이를 내게 주어진 올 한해 남은 길이로 느낀다.

풀을 뽑고 고추를 따느라고 수없는 쪼그림 왕복을 하다보면

한여름 뙤약볕을 건너고

푸르던 고추 붉어지는 날 부터 가을이 불쑥 매달릴테고... 

 

#.

민들레

참나물

두릅순

오가피순...

 

지천의 먹을거리들이 샘물로 정갈해지고 

온통 풀천지인 밥상 앞에서

볼이 미어지도록 쌈을 넣으며 우리 모두 행복 했었다

 

먹기는 풀이되

내 몸안 가득 봄볕 퍼지고...

 

#.

"오이 묘종이 서리를 맞기는 했는데 그냥 심어도 되지 않을까?"

 

"젊어서 골병 든 놈이 시집 장가 가서 제대로 아이 낳아 키우겄슈?" 

쑥맥의 질문에 후배의 현답,

 

#.

고추 심기를 마친 뒤 부터의 시간은 여유로움이 되어서

참 오랫만에 오른 뒷산,

 

씨 뿌려 가꿈 없이도 

온갖 먹을거리들이 풍성하고 화려하니

어떻게 다시 도시살이를 꿈꾸랴~

 

#.

앉았다 일어서거나

몸의 방향을 바꿀 때 마다 앓는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많은 일이 원인이기 보다는

평소의 게으름이 원인,

 

한솥 삶아진 청국장을 다독다독 덮어준 뒤

산골 어둠을 다독다독 끌어 덮어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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