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요롷게 됐을까? 요노무 명절 프로그램 이라는 것이...
옛날에는
최소한 내가 기억하는 명절의 풍경은 이랬다
[과거]
남자들은
벨루 할 일이 없다
중증의 오십견 이거나 팔이 없어 뒷짐을 질 수 없는 경우를 제외 하고는 의젓하게 뒷짐 지은 폼으로 집 안팍을 어슬렁 거리거나 젊잖게 가부좌 틀고 앉아서 잘 익은 술잔을 비워대며 무게 파악~ 잡고 있으면 됐다
가끔 바리톤의 헛기침을 부엌 쪽으로 날리면 알아서 눈치껏 음식이 들어 오고 이런 분위기에 목숨 걸고 딴지 거는 여인네는 동네 방네는 물론 이 나라 삼천리 방방곡곡 어디에도 없었다고, 일천한 내 기억은 물론 유구한 역사의 기록 어디에도 전해지는 사실 없다
[현재]
명절 증후군이라는 신종 용어가 생겨 났다. 영어로는 Syndrome이라고 쓴다는데 원인이 분명치 않은 다각적이고도 복합적인 병증 이라고 한다
밀리는 차가 싫고
그 거리를 가야 하는 것이 싫고
산삼 열뿌리 먹는 것 보다 시부모 한번 덜 보는게 보약 이라는데 그노무데를 내 발로 찾아 가는 것이 싫고
와장창 모여서 인내력을 함양하는 일이 싫고
나를 위한 쇼핑도 아닌데 장 보는게 싫고
이것 저것 음식 만드는 일도 싫고
치우는 일은 더 싫고
눈치없는 남정네들 한쪽에 모여 늴니리 맘보로 음주경연 대회와 병행하여 고스톱 경시 대회를 하는 꼴이 보기 싫고...
그러나
이제는 여인네들만의 상황이 아님을 이번 추석을 통해 스스로 겪어 낸 상황들을 썰로 풀어 보자면
우선 추석 명절을 준비하기 위해 바리 바리 시장을 봐야 했다
(주눅 든 얼굴로 목록표 봐 가며 카트 끌고 다니는 나 같은 남자들 여럿 만났다)
다음, 바리 바리 싣고 머나 먼 큰 집을 향해 눈에다 불을 켜고 운전을 해야 했다
(마누라와 아이들은 차가 도착 할 때 까지 잠에 취한채 혼수상태로 이동했다. 가끔 깰 때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음식을 사먹을 때 뿐 이었다)
큰 집에 도착 했다
드디어 판을 벌리기 시작 했다
송편소로 넣을 밤을
까고
삶고
으깨고
양념해서 준비한 다음 팔 걷어 부치고 송편을 빚어야 했다
송편을 빚고 있는 어깨 넘어 제임스 딘 같은 폼으로 커피잔을 든 형수와 마누라는 새우젓 눈을 한 채 은밀한 대화를 나누며 낄 낄 거리고 있다
아무래도 이 불쌍한 마당쇠의 평소 행동을 들추어 씹어대고 있는 것 같다
송편을 빚는 동안
"송편이 이게 뭐냐 이렇게 저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지도와 편달을 아끼지 않는 자상함도 보여 줬다
그러나
이노무 송편소는 잘 뭉쳐지지도 않을 뿐더러 툭하면 터지는 통에 마누라 몰래 속에다 통 마늘을 박아 넣고는 나만 알 수 있도록 표시를 해 놓았다.
마누라 하구 형수나 먹으라구...
이걸루 끝이 아니었다
부침질을 해야 했고
허리에서 쥐가 날 지경이라서 손바닥에 고양이 한마리를 그린 후 쥐가 나려고 할 때 마다 손바닥 고양이를 허리에 붙이는 부적으로 사용해 가며 이일 저일을 해야 했다
저녘에는 황공무지 하옵게도
하사해 주신 쐬주 일병을 비우고 곯아 떨어졌다가
다음 날 차례 모신 뒤에는 설겆이를 해야 했다
손에 주부 습진이 도지는 것 같다
이제 주부(主婦) 습진은 주부(主夫) 습진으로 이름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명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안 되고
잠 자다가 자꾸 가위에 눌린다
지금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명절 증후군 이다